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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중국전문음식점 ‘송죽정’

50년 전통의 옛날 맛 그대로

얼큰하고 고소한 삼선짬뽕 일품




모두가 못 입고 못살던 시절, 짜장면은 최고의 외식메뉴였다.

큰오빠 졸업식 또는 막내 동생 생일이나 되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 오랜만에 서울 사는 큰 고모가 찾아와 고기를 사주겠노라 데리고 나가면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전교 1등 하는 반장 미난이 보다 동네 북경반점 둘째아들 용석이가 더 좋았고, 또 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짜장면’이라고 답했었드랬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짜장면, 이제는 휘황찬란한 메뉴들에 밀려난 신세다.

‘오늘은 특별히 짜장면을 먹을까’에서 ‘오늘은 그냥 짱께로 때울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짜장면이 여전히 귀한 음식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영등포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 ‘송죽정’.
점심시간이면 아니 그 외의 시간에도 운이 나쁘면 짜장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송죽정 짜장면을 먹겠다고 집 앞 짜장면집을 외면하고 지방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물론 배달도 없다.

50년의 역사 탓에 단골은 이미 단골이 아니라, 친구이고 가족이다. 몇 일 전에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왔던 어린 아들이 자라 그의 손주의 손을 붙잡고 다시 찾기도 했다.

송죽정은 최근 쏟아지는 퓨전 중국집과는 달리,
전통을 고집한다. 중국본토의 중국음식의 전통이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때 먹었던 우리식 옛날 짜장의 전통이다. 우리가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은 맛보다 맛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는 걸 송죽정 사람들은 분명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금새 삼선짬봉 한 그릇이 떡 하니 등장했다. ‘등장’이라는 표현은 ‘나오다’라는 표현보다 사람의 심리를 압도하는 면이 있다.
아, 시뻘건 국물은 보기만 해도 땀이 쭉 빠진다.

송죽정은 무엇보다도 짬봉 맛이 기가 막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해삼, 멍게, 새우, 오징어 등 20여가지 되는 해물들이 그릇에 넘칠 지경이다. 그릇 맨 위에 오른 해물을 먼저 먹고 면을 먹을라치면 이미 배가 부를 지경이다. 그렇다고 쫄깃쫄깃한 면발을 남길 수 도 없는 일이다.

매운맛 뒤에 진하게 풍기는 고소한 맛은 미묘하게 어울리는 기름과 적절한 불조절, 신선한 재료 등 모든 기술과 재료의 통합적인 맛이다. 모든 재료는 최상급의 것만을 사용한다. 맛은 신선한 재료에서 시작된다는 고집 때문이다. 송죽정의 모든 재료는 인류호텔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것이 없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이것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빠져들까, 아니면 떨어지는 낙엽에도 정신 못 차렸던 여고시절을 회상해 볼까’ 에 대한 갈등이다.

송죽정의 고소한 짬봉에, 아련한 추억까지 더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02-2678-1323)

구인영 기자/her@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