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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여의도 죽전문점 ‘수라죽’

밥보다 나은 ‘수라죽’ 한끼

제주도 전복·성게로 만든 일품죽




‘죽 쒀서 개준다’

힘들여 한 일이 남에게만 이롭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대상이 죽이냐.

죽을 끓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죽은 밥과는 달리 수분 함유량이 많기 때문에 쉽게 끓어올랐다, 쉽게 식는다. 그래서 계속 저어 줘야 하고 불조절도 더 신경써야 한다.

‘변덕이 죽 끓는 듯 한다’라는 말도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끓어올랐다, 식었다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 그만큼 죽은 끓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음식이다. 이렇게 죽이 밥보다 더 많은 정성으로 조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밥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었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죽은 환자식, 유아식일 뿐, 일반인들에게 한끼로 부족하다는 편견은 사실 꽤 사나운 것이었다.

밥보다 나은 한끼 죽을 파는 여의도에 위치한 죽전문점 ‘수라죽’을 찾았다.

죽은 원래 특별한 양념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재료가 맛을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수라죽은 후한 점수를 받을 만 하다.

재료로 쓰이는 모든 해산물은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된다. 수라죽의 한재현사장의 부친이 제주도에서 부족한 물량을 그때그때 비행기편으로 보내고 있었다. 해산물 외 야채 등의 재료도 모두 고향 텃밭에서 가꾼 것.
“집에서 해먹는 것보다 맛이나 영양 모두 낫죠” 야채죽을 먹고 있던 젊은 손님이 불쑥 내던진 말은 빈말이 아니다.

특히 성게죽은 한재현사장 부부가 자체 개발한 것이어서 전국 어느 음식점을 뒤져도 찾아볼 수 없는 수라죽만의 특화메뉴다.

또 성게는 전복과 달리 양식이 되지 않는 해산물이기 때문에 제주도 해녀의 순수한 물질로만 얻을 수 있다. 그릇이라기보다 사발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 싶다.
성게죽이 한상, 한사발 푸짐하게 대령했다.

예상했던 죽 모양새가 아니었다. 노란빛 도는 밥물에 미역 등의 해조류와 버섯과 성게살이 푸짐하게 올라앉아 있다. 가끔 고소하게 씹히는 것은 성게만큼, 성게보다 더 귀하다는 성게알이다.

한 숟가락 뜨니, 해초맛과 더불어 성게 특유의 신선한 향이 물씬 풍겨난다. 비린내나 비린맛과는 분명 다른 신선하고 깔끔한 맛이다. 소금 외의 조미료도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 일반 음식점에서 내는 자극적인 맛과는 비교되는 은은한 맛이 감칠맛을 돋군다.

푸짐한 양 때문에 금새 배가 부르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면 다시 군침이 돈다. 수라죽의 메뉴는 가짓수는 적은 대신 하나하나에 정성과 맛이 그득하다.

성게국백반은 성게가 들어간 제주도 전통미역국으로 역시 서울에서 쉽게 맛 볼 수 없는 ‘귀한’음식이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맛 때문에 최근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 최고의 숙취해소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과장 섞인 사실!

호박죽은 텃밭에서 키운 호박과 100%찹쌀로 걸죽하게 끓여 나오는데 기존의 맹숭맹숭하고 묽은 호박죽과 비교하면 이미 맛을 본 기자도 억울하다. 곧 선보일 고구마와 치즈가 어울린 죽도 벌써부터 기대된다.

점심시간 등 식사시간에 찾아간다면 조금 기다리는 수고가 있을 것이다. 이 집의 모든 메뉴는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주문 즉시 조리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점심시간이면 출근도장을 찍던 손님이 주말에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빨리 강남부근에 2호점을 만들어야겠어요”

신이 난 것이다.

수라죽은 이제 막 문을 열었지만, 한사장은 2호점, 3호점도 자신있다. 욕심과 자신감만큼 맛과 품질은 확실히 믿어 볼 만하다.

△5호선 여의도역에 하차 KBS별관 뒷편 중앙빌딩 1층(780-0475)

구인영 기자/her@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