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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쫄깃한 새알심이 동동
단팥죽 입안에 사르르


푹푹 눈 나리는 밤이었다. 하루종일 손님이 붐빈 탓에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해 일찍 문을 걸어 닫았다. 반쯤 감긴 눈을 하고는 막 뒷방에 들어가려는 찰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왠 젊은 남녀가 문고리를 흔들며 문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누구요?”

가까운 공원에서 데이트하다가 문득 따뜻한 단팥죽 한 그릇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찾아왔다는 말이 문틈으로 전해졌다. 날씨도 추운데 마냥 밖에 둘 수 없는 일이어서 서둘러 문을 열었다. 금방내 따뜻한 단팥죽 두 그릇을 내어 줬더니 두 남녀는 고마워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주머니께 고맙고 죄송해서 그러는데요, 저희가 노래 한 곡 불러드려도 될까요?”

막 단팥죽을 먹고 입 주위 까만 단팥물을 채 닦기도 전에 어린 연인 한 쌍은 벌떡 일어나 나란히 손을 붙잡고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제목은 기억할 수 없지만 꽤나 잘했던 것 같다. 갑작스레 받은 이 어린 연인의 선물은 저절로 입가에 미
소를 만들어내더니만 순간 하루의 피곤을 싹 가시게 한다. 하얀 함박눈은 이 어린 연인들의 노래를 타고 푹푹 더 잘도 내렸다.

김은숙(65)사장은 이 맛에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을 2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나는 오래된 차향이 좋다. 언뜻 시골다방을 연상케 하는 내부도 정겹게 느껴진다.

모든 차는 직접 달인다. 특히 쌍화탕은 김씨가 직접 숙지황, 당귀, 천궁, 백작약, 감초 등 양질의 재료를 사다가 하루를 꼬박 달이는데 조리방법이 워낙 까다로와 정성이 가장 많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뒷뜰에는 들통이 쉬지 않고 끓고 있고 김씨는 그 끓는 들통을 쉬지 않고 살피는 모습이다.

언제나 좋지만 특히 피곤할 때, 감기 기운이 돌 때, 술 먹기 전후에 병후 회복기에 음용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어디어디 쌍화탕이 맛있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전라도든 경상도든 거리나 위치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머리 속은 항상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재료로 좋은 맛을 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기존 인스턴트 쌍화탕과는 감히 비교할 바가 못되는 맛이다. 첫맛은 쓰고 끝맛은 달콤한,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맛이 기가막히게 어울린다. 확실한 것은 깊은 맛이다. 또 깊은 향은 오랫동안 입안을 떠날 줄 모른다.

우리 입맛이 아무리 하루 세 잔씩 마셔대는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져 있더라도 이 집 쌍화탕을 한번 마셔보면 그 맛을 쉽게 잊지 못할 듯 하다.

녹각쌍화탕은 같은 쌍화탕에 녹각액기스가 말랑말랑하게 응고되어 나오는데 탕에 넣으면 금방 녹아 더 부드러운 맛을 낸다.

사실 이 집은 쌍화탕이 주메뉴이지만 최근에는 단팥죽이 쌍화탕의 인기를 앞질렀다. 100그릇이면 100그릇,

김씨의 손과 눈을 거쳐야만 테이블에 나오는 단팥죽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내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단팥죽 안에 들어 있는 밤과 잣도 고소함을 더한다. 기자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주먹만한 새알심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심봤다’를 외쳤다. 새알심 역시 매일 아침 직접 반죽해 만드는데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절묘하다.

이 집의 단팥죽을 먹기 위해 먼 지방에서는 물론 일본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의 맛이다.

단팥죽 4,500원, 인삼차 3,500원, 식혜 3,000원, 십전대보탕 4,500원 등 요즘 커피숍에서 파는 인스턴트 커피가 5,000원 이상인 것에 비해 가격도 기분 좋다.

그러고 보니 상호가 독특하다. 상호를 왜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으로 했냐는 질문에 김씨는 내가 원조니, 제일이니 하는 사람들 속에 ‘둘째’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외려 반문한다.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둘째들이 많으면 세상도 더 좋아지겠지요”

생활이 차로 승화된다는 김씨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전화번호 02-734-5302

구인영 기자/her@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