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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삼청동 수제비집

동동주를 부르는 얼큰한 수제비



21년간 한결같은 맛 자랑


칼바람이 새어 들어올까 옷깃을 여미고, 빙판길에서 위태하게 중심잡기에 바빠서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면서도 낭만적이여 보지 못했다.

오들오들 바들바들, 손끝에 전기가 짜릿하게 통할만큼 차가운 바람 속을 한참이나 꿋꿋히 참고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삼청동 수제비집에 대한 대단한 소문들 때문이다.

소문에 따르면 이 집은 삼청동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며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찾았던 곳이다. 최근에는 야구선수 박찬호도 이 집의 수제비 맛에 감탄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과 박찬호가 감탄했다는 소문에 이어, 식품환경신문사 기자도 감탄했다는 소문도 날까.

"자, 일단 먹고 해"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수제비 한 항아리가 기자 앞에 들이밀어졌다.
사리에 넘치도록 국자로 수제비를 뜨면서 다시 서두른다.
"먹고 해, 우리집 수제비 맛있어"

수저를 쥐어주고 다대기까지 손수 넣더니만 휘휘 젓는다. 그릇을 기자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더니만 넘친 국물을 한 손으로 '쓰윽' 훔치고는 아무말 없이 등을 토닥이고 자리를 피한다.
수제비가 밀가루음식이 아니었던가, 면이 얇고 부드러워서 밀가루의 텁텁한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 수제비를 수제비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잘 치댄 밀가루를 제대로 '뚝뚝' 떨어뜨리는 솜씨를 보고 일찌감치 그 맛까지 알아 봤드랬다.

멸치와 무, 각종 해삼물 등을 넣고 몇 시간동안 푹 끓인 국물은 '얼큰하다'거나 '시원하다'는 말로는 억울할 지경이다.

뭉텅뭉텅 썰은 풋고추와 비밀소스가 들어간 간장다대기는 한 숟가락만 살짝 떨어뜨려도 그 맛이 제대로 솜씨를 발휘해 감칠맛을 더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수제비집이라고 이름 붙었다고 수제비만 찾는다면 기가 막혀할 기가막힌 메뉴들을 놓치면 제 손해... 파전, 감자전, 녹두전, 쭈꾸미볶음 그리고 동동주까지 그 중 녹두전은 튀김 바삭하게 둘러 나오는데 그 고소한 맛 때문에 손님들 사이에서도 수제비와 인기를 견준다.

삼청동 수제비의 역사는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 싸고 맛있는 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대접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젊은 주부의 다짐에서 비롯된다. 사장 한기영(56)씨는 그렇게 삼청동 수제비집의 문을 열고 21년을 '한결같은 맛'을 고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10명이 앉아 먹기에도 비좁은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백여명이 들이 닥쳐도 거뜬하다.

식사시간이 아니어도 항상 시끌벅적하며 '문턱 닳아라' 손님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 25명의 종업원도 부족해 모두들 양손에 수제비 항아리를 들고 분주한 모습이다.

21년이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맛을 지켜왔기에 단골들도 무수하다. 엄마 손잡고 따라오던 어린딸이 결혼해 그의 어린딸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았던 일도 있었다. 여행가이드책자에 실린 이 집의 약도를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하루걸러 찾아오는 외국인단골도 있을 지경이다.

굵은 빗방울이 찬 바닥에 떨어지는지, 찬 마음 한 구석에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는 어느날, 누룩향 묻어나는 걸쭉한 동동주 한 사발에 맛좋은 수제비를 적당히 묵힌 김치에 둘둘말아 먹어볼까.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녹두빈대떡을 크게 잘라 간장에 찍어도 달근하고 진한 동동주 한사발은 절로 입에 붙게 마련이다.

이제 막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는가 싶더니만 금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 곳의 이른 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