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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당나귀와 골뱅이

70년대 분위기 물씬 음식 맛도 일품



퇴근길 예고 없이 찾아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회사 선배와 어느 가게집 처마밑에 서있었다.

처마밑에서 멍하니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소주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비오는 날 소주 한 잔에 대한 유혹은 감히 이겨낼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눈에 보이는 술집으로 뛰어들었다.

‘당나귀와 골뱅이’
가게 이름부터 촌스럽기가 하늘을 찌르더니만 내부는 더욱 가관이었다. 딱 70년대 대학가 소주방을 연상케 하는 전경이 펼쳐졌다.
아, 굵은 빗줄기만 피하자...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70년대 포크송이 흘러나왔다.
지푸라기로 엮은 정체불명의 볏짚더미가 테이블 마다를 구분해주고 있었는데 바닥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의자등에 기대어 서있는 것이어서 의자등을 살짝 치대자 볏짚더미가 뒤로 넘어졌다.

뒤에서 멀쩡히 술을 마시고 있다가 갑작스레 낭패를 보게 된 뒷 손님에게 어쩔 줄 몰라하며 미안해 하는데 외려 더 미안한 표정으로 볏짚더미를 능숙하게 세운다. 한 두 번 당해 본 게 아니고, 한 두 번 밀어 본 솜씨가 아니다.

거슬리는 볏짚더미에 기대어 낯설은 음악을 들으며 관심없던 직장 선배와 마시는 최악의 술.

하지만 술이 부리는 마법때문인지, 비가 부리는 마법때문인지 어느새 포크송이 귓가에 녹녹하게 묻어나고 구수한 주인아저씨의 입담에 재미가 나기 시작했다.

등뒤에 기댄 볏짚더미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마다하지 않고 술잔을 받아주는 선배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소주 5병을 해치웠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당나귀와 골뱅이’라는 이름처럼 가게에 들어서면 사람도 막 촌스러워져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술을 마시게 된다.
특히 이 곳은 여성 단골이 많은데 안주가 기가 막히기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7천원하는 부대찌개 하나를 시키면 큰 냄비에 이것저것 소복히 담겨 나오는데 그 맛이 전문점 못지 않다. ‘당나귀와 골뱅이’라는 이름을 왜 지었는가는 골뱅이안주를 주문해보면 알 수 있다. 쫄깃쫄깃한 사리와 매콤하고 시큼한 양념을 두른 골뱅이는 담백한 맛이 어울려 일품이다.
미더덕콩나물볶음 7천원, 야채순대볶음 7천원, 조개탕 5천원, 버섯매운탕 8천원, 해물탕 7천원 ... 경험하기 힘든 가격대에 경험하기 힘든 분위기, 만나보기 힘든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있는 ‘당나귀와 골뱅이’에서 좋은 사람과 소주한잔 어떨까.
낯선 낭만을 경험하게 될 것...

‘당나귀와 골뱅이’는 홍대주차장 골목에 위치해 있다.
홍대 술집들의 화려한 네온 사인 뒤를 찬찬히 살펴야만 할 것.



구인영 기자/her@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