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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우리쌀을 지키고 살리는 길

김병조 편집국장
내후년 쌀 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산 쌀의 기반이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규모의 ‘쌀 박람회’가 개막됐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열리는 박람회이기에 의의가 크다. 이번 박람회는 특히 정부나 생산자인 농민이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전개하는 범국민적인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쌀은 우리 국민의 주곡으로서 매일 먹는 입장에서는 마치 공기나 물과 같기에 “쌀도 박람회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사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매일 먹는 주식이면서도 얼마나 우리가 쌀에 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는가를 충분히 느낄만했을 것이다.
이미 전국적으로 1천5백여 종이 넘는 쌀과 쌀 관련제품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쌀로서 그저 밥이나 해먹고 가끔 떡이나 해먹는 보통의 가정에서는 놀랄만한 일이다. 쌀의 종류만 해도 각 지역별로 특화된 브랜드 쌀이 수십, 수백 가지가 될 뿐만 아니라 쌀을 이용한 가공 상품 또한 부지기수다.

문제는 국민들의 관심이다. 쌀을 주곡으로 매일 먹는 입장에서 더 이상 무슨 관심을 가져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다. 쌀이 주곡이긴 하지만 주식의 자리로는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밥보다는 피자, 짜장면, 패스트푸드를 더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억지로 밥을 먹게 함으로써 쌀 소비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제는 쌀로 만든 다양한 가공식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곧 우리 쌀 산업의 붕괴를 막는 길일 것이다. 다행히 이번 박람회를 통해 소개된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하니 긍정적인 미래가 기대된다.

소비자의 관심이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번 박람회를 주최한 조직위원회에서 <우리쌀 지킴이 100만 가정 모으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우리쌀 연간 구매계약 프로그램을 가동해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안정적인 유통 체계 확보를 위해 앞장서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구호에 그치거나 일시적인 이벤트로 전락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쌀시장 개방협상 시한을 1년여 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동을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부가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뚜렷한 주체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전개되는 운동은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쌀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쌀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어느 특정 단체나 계층의 몫만은 아니다. 특히 일시적인 우리쌀 소비 캠페인으로는 더더욱 우리쌀 산업이 처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 국민들이 쌀 관련 제품을 많이 이용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수한 우리쌀 관련 제품을 개발해 해외시장에 진출시키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식이 아니라 재정을 투입하고 마케팅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 줘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으로 우리쌀을 지키고 살리는 길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