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라면의 종류에서도 그 다양함이 세계에서 손꼽힌다.
가히 라면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에 와서 얼큰한 라면을 맛본 후 돌아갈 때 사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처럼 라면은 원조도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농심’이 있다.
2015년 4조 매출 ‘세계적 기업’ 변신
쌀국수·둥지냉면 등 틈새 개척 대성공
농심라면 히트로 사명 바꿔
‘라면’ 하면 떠오르는 회사인 ‘농심’은 국내 최초의 라면 회사인 ‘삼양식품’이 설립되고 2년 후인 1965년 신춘호 회장이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에 설립한 롯데공업㈜가 시작이다.
농심은 설립하면서 연구개발 부서를 발족해 처음부터 100%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시장에 도전하며 후발 주자로서의 도전정신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1971년 야심작인 ‘소고기라면’을 시장에 출시하게 됐고, 소고기라면은 농심을 시장점유율 23%까지 끌어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후 농심은 70년대 중반 무렵 벌써 시장점유율 35%대를 기록하며, 업계선두인 삼양식품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농심은 10년 만인 1975년도에 그 자본금이 100배가 넘는 5억2500만원이 됐고, 매출액도 1966년 약 2억원에서 200억원으로 100배의 성장을 보이며 실로 라면왕국의 시작을 알렸다.
1975년은 농심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해일 것이다. 사명이 바뀔 만큼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 ‘농심라면’이 출시된 해이기 때문이다.
농심(農心)이란 한자 뒤에 판각글씨체로 쓰여진 ‘라면’이란 글자 밑으로, 두 명의 남자가 달밤에 지게를 지고 서로 마주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이미지는 당시 교과서에도 실린 ‘의좋은 형제’를 나타낸 그림이다.
이 ‘농심라면’을 홍보하기 위해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후라이 보이’ 곽규석과 ‘막둥이’ 구봉서가 광고에 나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며 라면을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은 자매품인 ‘고구마깡’과 ‘새우깡’이 비쳤다.
흑백 텔레비전으로 비친 이 광고는 ‘농심라면’을 베스트 셀러로 만들었고, 1978년 그 영향으로 롯데공업㈜란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게 된다. 실로 라면 하나의 효과로 회사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농심은 이런 여세를 몰아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감한 설비 투자와 생산 시스템의 현대화, 업무의 전산화, 영업망의 확충, 연구개발 기능 강화 등 생산·영업·관리 체제 전반에 걸친 질적 고도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는 안성탕면, 너구리, 짜파게티로 이어지는 히트상품을 출시한다. 결국 80년대 초반까지 35%에 머물렀던 라면 시장 점유율이 1984년에는 40%대에 진입했고, 1985년 3월 마침내 시장 점유율 42%를 넘어서면서 업계 정상에 오르게 된다.
국내 1위 넘어 세계시장 공략
여러 시련들이 있었지만 농심은 꾸준한 노력으로 국민의 입맛에 맞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광고에 등장하는 농심 안성공장이 바로 라면맛을 만들어내는 스프를 만드는 곳이고, 이 이름을 따서 안성탕면도 등장하게 됐다.
농심은 신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 라면공식공급업체로 선정되며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라면을 선보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11월 농심은 라면업체 최초로 1000만불 수출유공탑을 수상하게 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심은 늘어난 소비를 맞추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잇달아 공장을 신축하고, 물류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1994년 7월에는 안양공장 내에 국내 최초의 무균자동화 ‘생생면’ 공장을 준공하고 11월부터 면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94년은 농심에게 있어서 컴퓨터 통합 제조 관리시스템을 생산현장에 도입하게 되는 중요한 해가 된 것이다.
모든 기업들이 그렇듯 농심도 국내 1위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사업다각화로 눈을 돌렸다.
1998년 제주도지방개발공사와 함께 ‘먹는 샘물’ 사업을 추진해 큰 발전을 이뤘다. 특히 1997년 거센 외환위기 강풍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며, 이듬해인 1998년에는 매출액 1조959억을 기록하며 식품업체로서는 가히 꿈꾸기 힘든 매출을 올렸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농심은 미국 LA에 공장을 준공하고 거대한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고 나섰다.
이제 미국 배낭족들도 여행 갈 때 라면을 챙길 정도라고 하니 농심의 역할은 이제 라면 하나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문화에도 변화를 주고 있는 셈이다.
쌀 이용 다양한 신제품 개발
농심은 신라면 새우깡에 이어 최근에는 쌀국수까지 식품업계 ‘히트 제조기’자리를 지키고 있다.
농심의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19.7% 늘어난 2조2100억원. 창립 50주년을 맞는 2015년엔 매출 4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다.
이 회사는 올해 경영지침을 ‘식품산업화’로 정했다. 이 회사 식품산업화의 핵심전략은 쌀을 산업화해 모든 가정에서 간편하고 든든하게 쌀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 웰빙면 전문 생산공장인 녹산공장을 설립,올해 쌀면 전용라인을 완공했다. ‘둥지 쌀뚝배기’ ‘둥지 쌀짜장면’ ‘둥지 쌀카레면’ 등 쌀 함량이 90% 이상인 이들 제품은 소화흡수율이 탁월해 속을 편하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시 3개월 만에 1000만봉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농심은 끊어지는 동남아식 면발이 아닌 쫄깃한 동북아 스타일의 쌀면을 개발하기 위해 약 2년 동안 500억원을 연구개발과 생산설비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개발된 제품이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제조하는 사출제면 기술과 45년간 축적된 농심의 라면 제조기술을 접목한 세계 최초의 압출건면 형태의 한국형 쌀국수다.
농심은 연구개발 기간 중 사용된 쌀만 약 840t(80㎏짜리 한 가마 기준 1만500여 가마)이라고 전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신제품 개발과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현재 전체 매출의 약 5% 수준인 쌀 제품 매출 비중을 2012년까지 10% 선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90%인 쌀국수의 국산쌀 함량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농심은 기존 라면시장과 스낵시장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카테고리 확장에도 주력하고 있다.
올 6월 출시한 국내 최초 체중조절용 국수 ‘미인(美人)국수 275’가 대표적인 예다. 체중조절용 식품은 체중의 감소·증가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식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신할 수 있도록 영양소를 구성해 제조한 것이다. 출시 4개월 만에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밖에도 농심은 ‘둥지냉면’ ‘후루룩국수’ 등 기존의 라면시장에 없었던 획기적인 신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둥지냉면은 2008년 5월 첫선을 보인 후 월 평균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고객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하며, 신개념 식품 등 고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 ‘산업표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농심이 만들면 그것이 곧 국민의 입맛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농심은 라면 시장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라면이 출시되고 사라지고 하지만 농심은 베스트셀러를 계속 만들어 내며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