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 3000억원 규모였던 막걸리시장은 지난해 4200억원으로 40% 정도 성장했다. 8월이 지나면서 잠시 멈칫거리고 있지만 이 추세라면 올해는 시장 규모가 5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2012년에는 1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막걸리 시장을 선점한 대기업들의 실적도 엄청나다. 막걸리 유통기간을 연장해 획기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국순당은 올 2분기 매출액은 260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3.3% 늘었고, 영업이익은 70억6000만원으로 1622.5% 급증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런 막걸리의 인기에 힘입어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막걸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농심은 막걸리 사업을 위해 3월 정기주총에서 특정주류도매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한편 중형 규모의 막걸리 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오리온은 관계사인 미디어플렉스가 5월 참살이탁주 지분 60%를 50억원에 인수하면서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참살이탁주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배경이 되면서 주가를 높인 브랜드다.
그 외에도 롯데주류는 국내 막걸리 시장 1위 서울탁주와 손을 잡고 막걸리 수출에 나설 계획이며, 샘표식품도 막걸리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뒤질 새라 CJ제일제당도 ‘대강소백산막걸리’ ‘탁사마’ ‘전주생막걸리’ 등 지역막걸리 3종을 전국에 냉장 유통하는 중이다.
대기업들의 막걸리시장 진출이 봇물(?)을 이루자 기존 중소 막걸리 제조업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동주조·우리술 등 22개 중소 막걸리업체는 대기업들이 잇달아 막걸리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공동으로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최근 한국막걸리제조자협회를 결성했다.
협회에 참여한 한 회원사 대표는 “막걸리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면 기존의 중소업체는 연쇄 도산할 것”이라며 “전국의 모든 중소업체들이 합심해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출을 막아낼 각오가 서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출은 중소업체의 도산은 물론 수십년 만에 활기를 띠는 막걸리산업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기업 진출의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알려 여론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출에 대해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시장이 미미할 때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붐이 일고 나니까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지난 4일 농식품부 국감장에서도 여론과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은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면서 전통주 문화를 훼손하고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중소업체를 노예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한국막걸리제조자협회 하명희 이사는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말한다”며 “하지만 현 막걸리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고 시장이 개척되면 원가절감 경쟁이 심해져 제도장치가 없는 한 상생할 수 없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대기업들의 막걸리시장 진출에 대해 “중소업체를 노예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던 황 의원은 또 막걸리에 애정이 없는 대기업이 자본을 무기로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비난했다.
이날 국감장에 또 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미디어플렉스 유정훈 대표에게 황의원은 “영화 업체가 왜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었냐”며 “불안정한 영화 사업을 완화하기 위해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시각이 있다. 막걸리에 대한 애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입을 두고 영세한 막걸리시장의 전체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안정적 품질과 위생 강화, 산업화 가능성 및 수출 효과와 규모의 경제 실현, 마케팅 활성화 등이 가능해진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CJ의 경우 막걸리시장 진입을 선언하면서 냉장시스템을 갖춰 해당 지역에 국한됐던 막걸리를 전국에 유통하고, 보증마크를 부착해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높이며, 막걸리의 품질 표준화와 위생기준 개선에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막걸리의 규모화와 표준화 등을 내세우고 있다.
또 막걸리 사업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은 막걸리산업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는 ‘막걸리의 세계화’다.
하지만 다시 문제는 전국에 가동 중인 533개의 막걸리 제조업체 가운데 연매출 1억원에도 못 미치는 67%의 영세업체들이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는 전국의 이름 없는 양조장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막걸리 사업에 진출한 대기업과 영세업체, 그리고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