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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프라이스' 여기저기 볼멘소리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초기부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는 턱없이 높게 책정된 제조업체의 권장소비자가격을 낮추고, 할인경쟁 등 유통업체들의 상술을 근절하기 위해 지난 7월 1일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당초 정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여러 곳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들의 혼란이다. 가격 표시가 없다보니 싸게 사는지, 비싸게 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아줌마닷컴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봐도 오픈 프라이스와 관련해서는 볼멘소리 투성이다. 한 회원은 "대형마트나 집 근처 마트에서 권장소비자 가격 대신 실제가격을 표시하고 있는데 종전보다 저렴해진 제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소비자를 위한 제도인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서민이 많이 찾는 식품들 가운데 과거보다 가격이 오른 경우가 많다는 불만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티프라이스’에 공시된 상품을 비교해 보면 라면과 과자 값은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보다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 프라이스 제도 시행 전인 6월과 시행 후 인 지난달 28, 29일 가격을 비교한 결과 새우깡의 경우 6월 평균가격은 674원, 7월은 686원으로 상승했다.

특히 대형마트에서의 가격변동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미아점)는 한 달 사이 470원에서 620원으로 올랐고 롯데마트(중계점) 510원→640원, 농협유통(창동점) 460원→570원, 홈플러스(방학점) 470원→640원이었다. 포카칩 오리지날도 6월 평균가격 1015원에서 7월엔 1027원으로 상승했다.

라면의 가격도 올랐다. 삼양라면(5개)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마트(미아점)는 2780원으로 변동이 없었고 농협유통(창동점)은 2350원→2780원, 홈플러스(방학점) 2550원→2780원이었다.

가격 면에서 더 큰 문제는 거주지역 인근에 가게가 많지 않다면 오히려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맹점도 드러났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자체는 손 놓고 있는 실정

또 당초 도입 목적인 안정적인 유통가격 정착에 따른 소비자와 영세유통업자, 제조업체간 윈윈도 지금으로서는 기대할 수가 없는 상태다.

실제로 경기도 고양의 한 동네 슈퍼에서는 L사의 모제품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이곳과 15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서는 같은 제품을 반값인 500원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규모가 작은 슈퍼들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영세슈퍼의 경우 공동구매를 생각해 볼만하지만 이도 큰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의 예를 보더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곳의 경우 지역의 1500여개 점포 가운데 단 100여 곳만이 가입돼 있어 공동구매를 통한 가격인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혼선을 빚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홍보 부족이 또 다른 이유다.

시행부처와 지자체들이 구체적인 관련 지침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보니 홍보가 될 리 없다. 시행 초기에는 판매업자들에 대한 교유 및 점검을 통해 정착을 유도해야 하지만 도와 시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각 도와 시에서는 지난해 가을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개정되기 전에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이라는 매뉴얼을 지경부로부터 받았지만 7월 확대 실시에 대해서는 따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하고도 이처럼 초기 대응에 ‘나 몰라’ 식이 되다 보니 정착의 길은 멀어지고 혼란은 가중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이정희 교수(중앙대 산업경제학과)는 “소비자가 제품 가격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악용해, 제조업체 혹은 유통업체가 비공개적으로 은근슬쩍 가격을 인상하는 등 오픈 프라이스제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대로 효과를 얻으려면 부작용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며 “정기적으로 시장의 가격동향을 조사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 소매점들에 대형 유통업체들의 가격동향을 알려줘 적정한 가격책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선진국은 큰 무리 없이 시행

우리보다 먼저 오픈 프라이스를 도입한 선진국은 큰 무리 없이 잘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대형 유통점 시장점유율이 낮고 그 영향력 또한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가격 설정에 있어서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성공 이유다.

미국이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한 시점은 1975년이다. 그 전까지는 미국도 소규모 유통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권장소비자가격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지만 이 제도가 가격 거품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폐지됐다.

권장소비자가격 의무 표시 제도가 폐지되면서 제조업체들의 눈속임 마케팅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전반적인 상품가격도 하락했다.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된 유통업체들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낮게 가격을 책정한 덕분이다.

일부 유통업체들은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려 저가로 치고 나오는 경쟁업체 전략에 대응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제외한 상품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 표시 여부를 업체 자율에 맡기고 있지만 유통업체의 힘이 세지면서 관행적으로 대부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로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권장소비자가격과 실거래가 차이가 과도한 품목에 한해 오픈 프라이스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50% 이상 차이 날 경우 무조건 오픈 프라이스를 적용하며, 33% 이상일 때는 도입을 권장한다. 권장소비자가격과 실거래가 차이가 33% 이하일 때는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할 수 있지만 요즘에는 표기율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 밖에 영국은 침구류 등 권장소비자가격과 실제가격의 차이가 큰 품목을 중심으로 이중가격 표시 금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독일은 제조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해놓고 유통업자에 대해 강요하는 행위를 경쟁제한 금지법으로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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