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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상품 확장, 최종 피해자는..

구매자 30% "싼게 비지떡..품질 불만" 토로

“이미 우리의 경쟁사는 다른 제조업체가 아니고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 업체들입니다. 이들은 지금 자체 독립상품인 프라이빗 브랜드(PB)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PB상품을 강화할수록 제조회사들의 고유 제품인 내셔널브랜드(NB)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입니다.”

식품제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 대표의 말처럼 지금 대형 유통업체들은 PB상품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PB상품을 ▷베스트(BEST) ▷이마트(E-MART) ▷세이브(SAVE) 등 3단계로 재편해 23% 수준인 자체상표 상품의 매출 구성비를 2011년 25%, 2013년 28%로 높인다는 복안이다.

롯데마트도 최근 PB상품을 주력 매출군으로 포섭하기 위해 '제3세대 PB'를 선언했다. 제 3세대 PB는 '품질'과 '고객맞춤'형 상품을 말한다. 롯데마트는 이들 상품을 올 연말까지 300여개로 늘리고, NB와의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홈플러스는 현재 26% 수준인 PB매출을 내년에는 32%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프리미엄 PB 부문을 현재 4%에서 큰 폭으로 상향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PB 상품 확대는 이들 대형마트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CJ오쇼핑 등 홈쇼핑 업체와 농협하나로마트 GS수퍼마켓 롯데슈퍼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 업태와 업체를 가리지 않고 PB 상품 개발과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 · 현대 · 신세계 등 백화점 3사는 PB 등 경쟁 백화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온리 상품'들을 앞다퉈 늘리고 있다. 이는 PB 상품이 경쟁사와 상품을 차별화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 데다 PB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수익성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 PB 상품들은 같은 품질과 등급의 NB제품보다 20~30% 가량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PB 상품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우리의 경쟁사는 다른 제조업체가 아니고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NB제품보다 20~30% 가량 싼 가격 경쟁력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납품업체 ‘눈물’로 만드는 PB상품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 가격 경쟁력이 “제조업체처럼 NB 상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유통매장에 진열하기까지 필요한 마케팅과 유통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20~30% 가량 싼 가격 경쟁력’ 속에는 앞에 말한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형 유통업체들과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단가에 계약을 체결하고 PB상품을 납품하는 납품업체의 ‘눈물’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해 8월 조사한 대형마트 납품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이런 제조업체의 ‘고충’은 그대로 드러난다.

PB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78.8%가 납품가격이 적정하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단가 인하 압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또 PB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60.6%는 자사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히려 제품 질은 동일한 반면 포장과 가격이 달라 자사 브랜드 간 경쟁을 초래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결국 어렵게 고유 상표를 키워 대형 마트에 입점해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대형 마트의 PB상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나오고 있다.

PB상품에 대해 깨지는 허상

더 큰 문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PB상품이 늘어날수록 납품업체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유통업체의 ‘단가 낮추기’는 결국 따른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멜라민 건빵’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또 대형유통 회사의 가루녹차 PB상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농약이 검출됐으며 또 다른 유통회사의 참기름에서는 발암물질이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이마트 튀김가루'에서는 쥐의 사체로 보이는 이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쥐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세계이마트가 일본 소지쓰사로부터 수입·판매하는 '자숙 냉동가리비살'에서 대장균군이 기준(10/g) 대비 18배(180/g)나 많이 검출돼 회수조치 됐다.

또 '이마트 쥐치포' 제품에서 기준치를 넘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돼 회수됐으며, 지난해 7월에는 '이마트 맛강정 스낵'에서 금속성 이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값싸고 품질 좋은 PB상품이라며 광고를 하는 데만 급급했을 뿐, 실제로는 해당 제품의 위생관리가 소홀했던 것이다.

대기업 브랜드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속았다"는 반응이다. 대기업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제품인 만큼 상품의 질에 있어서는 믿을 만하다는 허상이 깨진 것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PB상품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PB상품 구입 후 불만을 느끼거나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30%나 됐다.

같은 제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라 하더라도 대형유통 업체 측에서 제시하는 단가에 맞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는데도 지금 대형 유통업체들은 여전히 PB상품을 문어발처럼 확장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의 불합리한 유통 관행을 깨기 위한 법적 안전장치의 마련과 함께 대형 유통업체들이 PB상품에 대해 제조업체와 연대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관련 규정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