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위생법 개정의 후속조치로 식품위생법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업계의 관심이 이제는 식품안전기본법(안)의 제정으로 쏠리고 있다. 식품안전기본법(안)은 현재 정부안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안 등 모두 4개의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4개의 법안 내용에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어 심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식품안전기본법에 담고자 하는 내용이 이미 식품위생법 개정에 대부분 반영된 이상 오십보백보격의 새로운 법이 과연 필요한가라며 식품안전기본법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
그러나 필자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식품안전기본법은 반드시 필요하며, 또 제정 자체를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식품안전기본법을 어떤 성격의 법으로 만들고,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식품안전기본법이 어떤 성격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면 식품안전기본법의 제정이 추진된 배경과 취지를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식품안전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식품안전 관련 행정체계의 난맥상 때문이다.
식품안전 관리부처가 8개 부처로 분산돼있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정부 내에 식품안전정책에 대한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식품행정체계의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 굳이 식품안전기본법이 없어도 해결 방법이 있긴 하다. 행정체계를 개편하면 된다. 그러나 행정체계를 개편하는 일은 부처간의 이해관계와 정부 조직을 바꿔야 하는 일 등으로 쉽지가 않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에서 ‘식품관리처’ 신설 등을 통한 식품행정의 일원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청와대의 반대에 부딪쳐 무위로 돌아간 사실이 이를 반증해준다.
행정체계를 개편하지 않고서 식품행정의 일원화를 추진하는 방법은 법적 근거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식품안전기본법의 성격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행정체계상의 시스템을 일원화하지 않고서도 관련 법령의 제정과 개정권을 가지면서 부처간의 정책을 통합 내지 조정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의 사실상의 일원화나 다름없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헤드쿼터가 있으면 된다. 이를 반영하듯 발의된 4개 법안이 모두 식품안전위원회 또는 식품안전정책위원회라는 이름의 기구를 신설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식품안전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인 행정위원회로 둘 것을 제안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발의안을 제외하고는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식품안전기본법을 만들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식품관련 중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허둥지둥 우왕자왕하는 행정기관의 업무처리 수준으로는 식품안전에 대한 정부 정책에 국민들이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지금까지 발생한 대부분의 대형 식품안전 사고의 결과가 정부의 당초 발표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해준다. 식품행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식품관련 안전사고 발생 시 해당 식품의 위해성 여부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속하게 평가해서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식품안전기본법은 식품안전관련 행정체계의 일원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헤드쿼터를 만드는 것과 소비자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과학적인 위해성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요체다.
이같은 핵심적인 요소를 충족시킬 수 없는 식품안전기본법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식품안전기본법이 소비자 권익 보호와 이를 위한 사업자 책임 강화를 위해 만들어지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식품안전기본법은 소비자보호법이 아니며, 사업자 규제를 위한 법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식품안전기본법은 그야말로 식품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틀을 마련하기 위한 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병조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