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한 각종 로드맵이 제시됐다. 로드맵은 가야할 정책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별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마스트 플랜(mast plan)을 세우고 액션 플랜(action plan)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정책 추진의 혼선을 피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같은 로드맵이 유행처럼 남발되는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제대로 그려진 로드맵이면서 실행이 뒷받침 된다면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식품정책과 관련된 로드맵은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식품정책에 대한 로드맵이 시급하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식품정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추구해야할 목표가 두 가지다.
하나는 안전성 확보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진흥이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느냐, 어느 쪽을 우선시 하느냐, 그리고 액션 플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업계에 미치는 영향 내지는 대응방향이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로드맵 설정은 시급하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공식 로드맵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나 당국자의 발언 등을 통해 방향은 어느 정도 감지가 되고 있다. 식품위생법을 강화하고 식품안전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 등을 볼 때 정부의 식품정책은 일단 안전성 확보에 우선을 두는 것으로 파악된다.
식약청장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그동안 “규제강화를 통해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신뢰가 높아지면 그것이 식품산업을 진흥하는 지름길”이라고 하는 발언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일견 보면 그 방향이 맞아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액션 플랜들을 따져보면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달성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특히 정부의 지원책을 갈구하고 있는 식품업계의 생각과는 너무도 큰 괴리를 보이고 있기에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정부는 식품위생법 개정을 통해 규제와 처벌조항을 대폭 강화한데 이어 식품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또 다른 규제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문화를 조성할 책무가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업체들의 목을 죄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동안의 각종 대형 식품 안전사고가 업체들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위생관리 행정의 난맥상과 미숙함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또 업체에 잘못이 있는 경우도 현재 식품업체가 안고 있는 영세성과 취약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안전성 확보를 담보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정부의 식품정책 방향의 수정을 요구한다. 규제강화를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곧 산업을 진흥하는 길이라는 시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허약한 체질을 개선시키고 경쟁력을 높이는 등 식품을 산업적인 차원에서 육성시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안전성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역발상을 해주길 바란다. 채찍은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더구나 당근 없는 채찍은 한계가 있다.
최근에 정부 당국자의 입을 통해 식품산업 진흥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총리실에서 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기초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차제에 정부가 식품정책과 관련된 멋진 로드맵을 제시하기 바라며, 그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산업진흥을 통한 안전성 확보이든 아니면 안전성 확보를 통한 산업진흥이든 간에 이제는 분명한 정책방향을 제시할 때가 됐다고 본다.
김병조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