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설 연휴 기간 중에 웃지 못 할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대통령 기념품으로 선정돼 청와대에 추석 선물용으로 납품까지 된 적이 있는 유명 복분자주 제조업체가 가짜 원액을 사용하다가 검찰에 적발된 사건이다. 검찰에 따르면 문제의 복분자주 제조회사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미국산 블랙베리 원액 30%를 섞어 만든 복분자주를 ‘복분자 과실 100%’라고 표시하면서 진품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해왔다는 것이다. 문제의 복분자주는 2002년 11월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 선발대회’에서 주류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003년 8월에는 대통령 기념품으로 선정돼 청와대에 추석 선물용으로 2천500여병이 납품되기까지 했던 제품이다. |
문제는 청와대에 납품까지 됐던 유명 제품이 버젓이 시중에 가짜로 유통되고 있는데도 이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가짜 복분자주를 적발한 검찰은 제조회사가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을 집행하면서 식품위생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청은 주류에 관한한 기본적으로 관리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이 식약청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한국전통식품’이라는 영광스러운(?) 딱지를 붙여준 농림부 역시 사후 관리감독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류에 대한 감독권한은 국세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세청이 지금까지 주류를 식품안전 차원에서 관리감독권을 발휘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세청은 이번의 경우도 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탁주와 약주 등의 주류제품에 대한 전면적인 위생 점검에 나서겠다고 야단이다.
이번 사건은 식품위생 행정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품위생 관련 행정체계가 일원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식품이면서 엉뚱한 곳에서 관리 감독권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주류와 생수(먹는 샘물)이다.
주류는 국세청, 생수는 환경부가 관장하고 있다. 생수를 환경부에서 관장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특히 주류를 국세청이 관리감독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세청이 주류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이유가 세금 때문이라고 한다.
주류에 많은 국세가 부과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금징수와 관리감독권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오히려 부정과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필자는 일선기자 시절 국세청을 출입한 적이 있다. 국세청 기자실에는 항상 주류업체들이 무료로 제공한 술이 박스 채로 쌓여있었다. 인허가권과 관리감독권을 가진 국세청의 기자실에 공짜 술이 넘쳐나는데도 국세청이 해당 업체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고 있다면야 무슨 걱정일까. 국세청이 내걸고 있는 제1의 업무지침은 ‘공명정대’이다. 공정한 잣대가 생명이다. 그런 기관이 특정 산업에 대한 인허가권과 관리감독권을 쥐고 있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국세청이 주류업체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것도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특히 위생과 유통에 대한 관리감독권까지 행사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주류의 경우 예전에는 소주와 맥주 등 제품이 단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주류제조시설 기준이 완화됨에 따라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원료나 성분 등 위생 및 보건 차원에서 관리감독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식품위생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한 국세청이 그 일을 맡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청와대로 간 가짜 복분자주’ 사건을 계기로 식품위생관리 제도를 포함한 식품산업 전반에 대한 행정체계 개편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