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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중국진출과 知彼知己(지피지기)

김병조 편집국장
92년 원단에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특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북한에 대한 투자에 많은 정성을 쏟을 때였다. 반면에 중국에 대한 투자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정 회장에게 “왜 현대는 중국 진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정 회장으로부터 나온 답변은 “중국은 그리 간단한 나라가 아니에요, 어설프게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오”라는 것이었다.

한중수교 직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한-중간의 교류가 활발할 때인데다가 기업 입장에서는 거대 중국시장을 놓고 누구나 군침이 돌 만한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그 해 8월 24일 한중수교가 이뤄진 이후에도 내가 알기로는 현대그룹의 경우 중국 투자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95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 가지 놀란 사실은 중국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도 그런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매월 약 6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중국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투자 성공확률은 매우 낮으며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이 중국투자 후 4년 이내에 철수하든가 청산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 필자가 보기엔 중국진출과 관련해 知彼知己가 돼있지 않은 가운데 무턱대고 진출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제도나 법규, 각종 투자여건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문화에 대해 특히 중국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덤비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사람들의 국민성은 어떤가. 우선 가장 큰 특징이 소위 말하는 만만디(慢慢地)다. 느리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상술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다. 중국 사람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 세 가지의 국민성을 감안하지 않고 중국에 진출했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만만디인 사람들을 상대로 조급증을 내고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하다간 스스로 지쳐 포기하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만만디인 사람들을 상대로 할 때는 오히려 우리 쪽이 더 만만디일 정도로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대응할 때만이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식품업체 중에서는 이같은 전략으로 중국진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농심라면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중국회사 라면값과 농심라면 가격간에는 엄청난 가격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심은 가격 경쟁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품질로 승부를 걸어 성공을 했다.

중국에 진출을 할 때는 ‘중국인들이 상술이 뛰어나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 필요도 있다. 중국인들이 상거래를 할 때는 세 가지 속성을 보인다고 한다.

첫째는 ‘이것 아니면 안된다’ 할 정도로 탐나는 경쟁력 있는 물건의 경우 무조건 현찰을 주고 산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쟁관계에 있는 물건을 살 때는 절반은 현찰로 절반은 외상을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저 그런 물건을 살 때는 아예 전부 외상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철저히 계산적으로, 그러면서 만만디로 임하는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한다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같은 우리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는 ‘중국 투자, 이런 점에 유의하라’며 ‘중국투자 10계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 내용들도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이지 중국 문화에 대한 분석, 특히 중국 국민성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대처방안 등은 없어서 아쉽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실정법만 법이 아니라 관습도 법으로 통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실정법이 규정대로 지키면 되지만 관습은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많지만 중국에 대해 얼마나 연구하고 준비를 하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식 경제논리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