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맛이란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조리법의 노하우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한식의 손맛은 음식 장만에 그토록 정성을 쏟으셨던 어머니들이 대를 이어가며 습득했던 기술이었다. 이 기술 없이는 온전한 음식들을 만들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깐 김 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점심의 주 메뉴이었던 칼국수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밀로 만든 칼국수는 서민들과의 친밀감을 대변하는 소박한 국민 대통령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 밀 칼국수는 면발이 약해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은 칼 국수 오찬에 초대 받았던 식품 학자이었다. 우리 밀은 끈기가 없으니 반죽할 때 콩가루를 넣으라는 조언이었다.
이때 콩가루는 반드시 날 콩가루 이어야한다. 이 식품학자는 날 콩가루에 있는 특정 효소가 밀가루 단백질의 구조를 바꾸는 생화학적 작업을 한다는 과학적 원리까지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하바드 대학교 응용 공학과에서는 세계적인 쉐프들의 요리 기술을 선보이는 kitchen science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인기가 많아서 수강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왜 하필 물리학자, 수학자, 공학 전공 교수들이 요리 과목을 개설하고 있을까?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치려는 걸까? 여기서 쉐프들은 최고의 요리 기술 (know how)을 보여주지만 교수들은 요리 과정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 (know why)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즉, 손맛의 정체를 찾아내는 창조적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가?
조상 대대로 몇 천년을 통해 시행 착오를 거쳐가며 축적해온 조리법, 즉 손맛은 우리 한민족만이 가진 위대한 유산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참 많은 조리법의 know how를 알고 있었다. 내노라하는 청와대 쉐프들보다 한 수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머니들의 손맛의 비법을 쓰잘데 없는 잔소리같이 무시하고 경원시하지나 않았는지. '한식의 품격'에서 저자가 지적한 대로 한식을 '머리 없는 손'의 음식이라고 폄하하고 있지나 않은지. 음식 축에도 끼일 수 없는 어설픈 한식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이제 우리는 조상들의 손맛(know how)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뿐 아니라, 과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오랜 축적의 시간 속에서 쌓아온 조상의 지혜에서 과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창조적 작업 말이다.
왜냐하면 한식의 손맛에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섭리가 숨어 있으니까. 그 과학적 원리(know why)는 도깨비 방망이가 돼 첨단 조리 기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식품 소재, 세계인의 건강 식품을 탄생시키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 것을 사랑하는 한국민의 자긍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