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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정동영 선배에게

김병조 편집국장
열린우리당이 정동영의장 체제가 되고 난 후 정당지지도가 급상승하는 등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의장은 대표적인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계에서도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선배이다. 정치인들 중에는 언론인 출신들이 유난히 많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이 많아 사안을 보는 안목이 넓고 돌아가는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언론인 출신이 정치에서도 성공할 확률은 높은 게 사실이다.

정동영 선배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차세대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우매하지만 ‘선배 잘 돼라’는 충정에서 감히 정 선배에게 몇 마디 고언을 던진다.
필자는 지난 1월 18일 정동영 선배의 동정기사 중에 하나를 접하고 놀랬다. 기사 내용은 “4.15 총선에서 우리당이 원내 1당이 될 경우 학교급식법을 개정, 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 하겠다”는 요지였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과수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FTA를 비준하는 대신 800만명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농가피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접하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정 선배도 정치인, 아니 정치꾼이 돼가고 있구나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 생각은 학교급식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관계자들이 코치하는 대로 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어느 경우이든 문제가 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정도를 걷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보통의 ‘정치꾼’이 하는 인기를 의식한 발언은 아니었다고 그나마 생각하고 싶다. 만약의 경우 학교급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밑에 사람들이 ‘코치’하는 대로 말을 했다면 그 또한 큰 문제이기에 지적하고자 한다.

기자는 기사를 쓸 때 정확한 팩트(사실)에 근거를 해서 기사를 쓰는 게 원칙이다. 오랜 기자생활을 한 정 선배가 그걸 모를리 없고 정치인이 돼서도 본인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기자시절 기사를 쓸 때와 같은 자세로 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학교급식에서 우리농산물 사용을 의무화 하겠다는 발언은 정 선배가 기자생활을 했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발언이었다.

굳이 논리를 반박하자면 우리 농산물만으로는 급식재료를 모두 충당할 수가 없다. 학생들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되는 식단을 짜려면 몸에 좋은 콩으로 만든 메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콩의 자급률은 7.3%에 불과하다.

또 밀가루로 만든 각종 메뉴도 내놓아야 할 텐데 밀의 자급률은 0.2%에 불과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콩과 밀가루를 원료로 하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많은가. 콩과 밀가루를 원료로 한 음식을 빼고 식단을 짠다 하더라도 문제다.

문제는 국산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할 경우 학교급식의 단가가 최소한 지금보다 50%는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재 학교급식의 끼니당 단가는 2000원 안팎인데 이나마도 지불하지 못하고 점심을 굶는 아동이 전국적으로 17만 명이나 되는데 한끼 식사가 3000원 안팎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인의 말 한마디, 특히 주목받는 정치인의 언행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생각없이 말을 하거나 비현실적이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순간적인 인기는 끌지라도 끝내는 신뢰감을 잃게 된다는 점을 정 선배는 잘 아시리라 믿는다. 언론 현장에서 느낀 한가지를 지적하면서 지금이라도 기자정신으로 돌아가 주길 부탁한다.

김병조 편집국장/bjkim@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