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수협이 대기업 오리온과 손잡고 김 가공·수출 합작법인 설립에 나서면서 협동조합의 공익적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영세 중소 김가공업체들은 “수협이 대기업의 편에 섰다”며 생존권 위기를 호소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어기구)의 수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는 수협의 합작 추진 명분과 중소 김가공업체의 생존권이 정면 충돌했다. 의원들은 “협동조합이 공익적 역할을 저버리고 시장 경쟁자로 나섰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업계는 “대기업과의 합작은 영세 업체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은 “수협법 제1조는 어업인과 수산물 가공업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공익적 협동조직임을 명시하고 있다”며 “그런데 수협이 대기업 오리온과 합작해 김 수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설립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우리나라 김 수출은 126개국, 약 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지만 이 시장의 주역은 대기업이 아니라 전체의 95.6%를 차지하는 929개 중소기업”이라며 “협동조합이 대기업과 손잡고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은 공익을 사익에 내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김수출협회는 오리온이라는 대기업과 합작해서 수협이 공룡화해 시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공익 포기한 합작” vs “판로 확대 위한 시도”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양태용 한국김수출협회 회장은 “수협은 물김 위판과 자금 지원, 해외무역센터 운영 등 공익적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기관”이라며 “그런 수협이 오리온과 김가공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공익을 포기하고 편익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 회장은 “작년과 재작년 물김 가격 폭등으로 공장을 멈춘 업체도 있고, 일부 대표는 경영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협이 대기업과 합작해 시장에 진입하면 영세업체들은 버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조 의원은 "대기업과 합작하려 했다면 CJ나 동원 같은 더 유명한 김 브랜드가 있는데 왜 하필 오리온인가”라며 “오리온 하면 김보다는 다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기성 수협중앙회 대표는 “수산물 상품 개발과 해외 유통망을 갖춘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 오리온을 선택했다”며 “기존 생산업체들과는 협약이 어려워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조 의원은 “영세 중소업체들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노력해 해외 바이어를 직접 발굴하고, 우리나라 김 수출 시장을 오늘의 수준으로 일궈왔다”며 “수협법 제1조는 어업인과 수산물 가공업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위해 수협이 존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 어디에도 대기업과 협력해 그들의 지위를 높이라는 내용은 없다”며 “이는 명백히 수협의 설립 취지에 어긋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중소기업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난해 물김 폐기 사태 이후 생산자들의 원물 손실이 커졌다”며 사실상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수협의 경제사업·가공산업은 해수부 인가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수협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추진한 사업”이라며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당 이만희 의원(경북 영천시청도군)도 “양식어민들은 판로 확대 측면에서 환영하지만 영세 가공업체들의 우려도 현실적”이라며 “중앙회는 어민과 가공업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생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위생, 노동, 인력 공급 체계의 정상화가 병행돼야 한다”며 “중앙회가 현장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불법 양식 방지 등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반발 확산… “공익 훼손, 즉각 철회해야”
한국김수출협회 회원사들은 최근 국회 앞에서 ‘오리온 합작법인 철회’를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
양태용 한국김수출협회 회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 앞에서는 울분을 참지 못한 김가공업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운영하거나 장애인을 고용해 어렵게 회사를 꾸려가는 영세기업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나라를 세계 1위 김 수출국으로 만든 주역이 바로 이들”이라며 “그런데 수협과 오리온이 합작해 시장에 진입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영세기업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양 회장은 “수협이 해야 할 일은 대기업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원물 단계부터 위해요소를 차단하고 안전한 먹거리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합작법인을 철회하거나 영세업체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수협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생산자의 합리화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오리온수협’ 설립 추진… 수협·오리온 각각 50% 지분
수협 원물 공급–오리온 가공·판매… 3년 내 업계 5위 목표
수협중앙회와 오리온은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는 합작법인 ‘오리온수협’ 설립을 추진 중이다. 총 출자 규모는 600억 원(각 300억 원)으로 법인 설립 시점은 11월 첫째 주로 예상된다.
공장 부지는 전남 목포·나주 일대로 거론되며, 연내 착공 후 2026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구조는 수협이 마른김 등 원물 공급을 맡고, 오리온수협이 이를 가공·판매하는 형태다. 양측은 3년 내 가공김 업계 5위권 진입과 매출 6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도 병행된다. 오리온은 중국·베트남·인도·러시아 등 자사 해외법인을 전진기지화해 생산·판매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 김 수출업체는 973곳이며, 이 중 95.6%인 929곳이 중소기업이다. 2024년 기준 김 수출액은 9억9,700만 달러, 이 가운데 마른김 수출액은 4억728만 달러(약 40%)를 차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