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는 ‘디지털 시대의 식품·건강기능식품 안전관리’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번 감사에서는 AI가 만든 가짜 의사 광고부터 의약품을 흉내 낸 일반식품, 기능성을 내세운 허위 건강식품까지...생성형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 확산이 불러온 새로운 리스크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다.
의원들은 “식약처의 관리체계가 10년 전과 다르지 않다”며 “이제는 ‘눈으로 단속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AI가 만든 허위광고, 아직도 사람이 눈으로 잡는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실제 의사로 보이는 인공지능(AI) 인물이 등장하는 ‘니코틴 배출제’ 광고 영상을 국감장에서 직접 공개했다.
한 의원은 “이 영상 속 전문가들은 모두 AI로 만든 가짜 인물이다. AI를 활용한 가짜 의사.약사 전문가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국민 입장에서는 이런 영상을 보면 굉장히 설득을 받게 된다"며 식약처의 현행 허위.과대광고 대응 방식이 시대 변화에 뒤쳐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약처가 여전히 AI가 만든 건강기능식품 광고를 기존의 허위광고 범주에 넣어 대응하고 있다”며 “이런 접근은 지나치게 안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AI 생성 광고는 확산 속도와 영향 범위가 전혀 다르다”며 “단순히 허위광고로 분류할 게 아니라 별도 항목으로 집계하고, 생성 추세·확산 속도·플랫폼별 유통 양상, 연령대별 구매 전환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AI 기반 광고는 하루에도 수차례 생성·삭제가 반복되는 만큼 속도전이 핵심”이라며 “앞으로는 건강기능식품 관련 광고에 대해 사전승인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은 AI 기술 확산으로 인한 새로운 규제 공백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현행 식품표시광고법, 약사법, 화장품법, 의료기기법 모두 의사나 약사가 특정 제품을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AI로 생성된 ‘가짜 의사’나 ‘가짜 약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법적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현재 식약처에는 AI 생성 인물을 활용한 광고를 규제할 별도의 기준이 없다”며 “이런 광고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표시·광고 위반으로만 처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오유경 식약처장은 “최근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소비자의 오인과 혼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현행 법령의 ‘누구든지’ 조항을 근거로 규제해 왔지만, 생성형 AI 광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보다 명확한 법적 정의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가 게시물 관리에 공동 책임을 지는 체계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의약품인 줄 알았다”…위고프로·알부민 등 오인광고 실태
건강기능식품 광고의 혼탁은 단순한 표시 문제를 넘어 소비자 안전으로 직결된다.
남 의원은 “의약품처럼 보이도록 광고하는 ‘알부민 음료’는 사실 단순한 단백질 보충식품에 불과하다”며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착각할 수 있는 표현은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식약처에 여러 차례 대책을 촉구했지만 여전히 허위광고 모니터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광고 단속만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남 의원은 또 “현재 다수의 일반식품이 정제나 캡슐 형태로 제조돼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오인할 위험이 크다”며 “정책 연구를 통해 일반식품의 캡슐형 제품화 자체를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은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연상시키는 ‘위고프로’가 버젓이 온라인에서 팔리고 있다”며 “성분 단위 표기와 의약품 용량 단위를 흉내내 소비자를 기만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오유경 식약처장은 “정제나 캡슐 형태의 일반식품은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지난해 국감 이후 관련 심각성을 공감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 처장은 또 “현재 정제·캡슐형 식품의 허용 범위를 재검토하고 있으며, 기능성 표시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백종헌 의원은 온라인 건기식 유통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업계와 직접 만나 가이드라인 등 대안을 마련해 제시했다.
백 의원은 “식약처가 민간 플랫폼을 직접 규제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플랫폼마다 제재 방식이 달라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네이버·쿠팡·G마켓·올리브영 등 주요 플랫폼과 직접 협의해 업계 자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며 판매자 제재 표준화, 모니터링 인력 확충, 금지어 확대, AI 필터 고도화 등 네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이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사와 같이 협의를 해 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배달앱 입점도 백화점처럼”…위생 사각 해소 주문
배달앱을 통한 식품 유통이 일상이 됐지만 입점 관리 체계는 여전히 느슨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은 “백화점 식음료 매장은 입점 전 위생검사를 거치지만, 배달앱은 단순 신고만으로 입점이 가능하다”며 “이제는 플랫폼과 식약처가 공동으로 위생을 관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 식약처장은 “배달 플랫폼의 위생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일 필요가 있다”며 “매우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하며 식약처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건강 책임지는 기관, 내부 기강부터 세워야”
식약처 내부의 비위와 갑질 문제도 국감의 주요 화두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은 식약처 내부 공직기강 해이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다. 김 의원은 “식약처의 관리·허가를 받아야 할 기업으로부터 주식을 받은 직원이 있다”며 “화장품 인허가 업무를 맡았던 간부 직원 A씨가 DLS라는 화장품 회사로부터 주식을 차명으로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A씨는 2020년 전후로 처남 명의로 해당 회사 주식을 받았고, 현재 시가로 약 2억 원에 달한다”며 “국민의 안전을 평가·허가해야 할 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음주운전, 검체 절취·판매 등 각종 비위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며 “공직기강이 무너진 기관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내부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미화 의원은 식약처 공무원의 권한 남용 의혹을 제기하며 조직문화 전반의 개선을 촉구했다.
서 의원은 “지난 9월 HACCP 코리아 행사장에서 식약처 HACCP 업무 담당 과장이 업계에 ‘스마트 HACCP을 적용하지 않으면 불시 점검을 하겠다’고 발언했다”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업계를 압박한 것은 명백한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원실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당시 현장 분위기가 ‘아연실색’할 정도였다고 한다”며 “제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업계를 협박하는 것이 식약처의 관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혹시 처장이 HACCP 사업에 관심이 많아 실·국·과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 업계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내부 관리 체계 전반의 점검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오 식약처장은 “종합청렴도를 포함해 전반적인 공직기강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청렴도 제고를 위해 직접 챙기고 개선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수입식품·기내식 안전,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식품 안전의 국제적 이슈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미국산 참깨의 글리포세이트 잔류 허용기준이 국내보다 800배 높지만, 식약처는 올해 단 두 건의 샘플만 검사하고 ‘적합’ 판정을 내렸다”며 “검사 강화와 유통 모니터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 처장은 “보세구역에 보관 중인 해당 물량의 반송 여부를 확인 중이며, 앞으로 미국산 참깨 수입 시 전량 글리포세이트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기내식 위생관리 실태가 여전히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대장균이 초과 검출됐던 케이터링서비스파트너 제품이 현재까지도 항공사에 납품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승객 입장에서 대장균 검출 업체의 기내식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 의원실이 직접 항공사 기내식 담당자들과 통화해 본 결과, 대부분이 해당 적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기내식 납품업체가 적발 내용을 항공사에 전달하더라도 담당자 선에서만 공유되고, 승무원이나 승객에게는 전혀 공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오 처장은 “국민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검토해서 보고드리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푸드QR은 있지만 찾을 수 없다”…접근성 기준 미비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직접 시연하며 “제품마다 QR코드 위치가 제각각이라 소비자가 포장지를 더듬으며 ‘수상한 사람’처럼 오해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 식약처장은 문제점에 공감하며 "푸드QR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인 만큼 활용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홍보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타임바코드, 삼각김밥만 되고 우유는 왜 안 되나”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소비기한제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이 유통기한과 혼동한다”며 “삼각김밥에는 결제차단 시스템이 적용되지만 우유·빵은 제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기한 정보 관리가 기업 의지에만 맡겨져선 안 된다”며 “중소업체의 장비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오 처장은 “타임바코드 장비 도입 비용(1,500만~2억 원)에 대한 중소기업 매칭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빵과 우유 제조업체를 직접 찾아가 타임바코드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일부 업체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불법 차’ 판매 논란”…식약처 “판매 금지조치 검토”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정지영 현대백화점 대표를 국회 증인으로 출석시켜 현대백화점 식품관 내 불법 ‘농약차’ 판매 실태를 지적했다.
한 의원은 “소비자들이 웰빙 음료로 인식했던 우롱차가 알고 보니 기준치를 초과한 농약 차였다”며 “해당 제품을 납품한 드링크스코가 우롱차를 국제우편을 통해 불법 반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수입신고나 안전성 검증 절차가 전혀 이행되지 않았고, 현대백화점도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제보가 들어오기 전까지 식약처도 해당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백화점은 문제가 된 제품에 대해 5개월간 품질점검이나 내부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며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라면 소비자는 당연히 안전성과 품질이 검증된 것으로 믿는데, 이러한 관리 부재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또 현대백화점의 ‘불법 농약차’ 판매 이후 식약처가 해당 백화점을 ‘식품안심구역’으로 지정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식약처장은 "지정 과정에서 사전 점검 절차가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겠다”며 “앞으로 안심구역 지정 전 사전 점검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지영 현대백화점 대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 시스템을 전면 점검했다”며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절차와 관리체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등 여러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국감은 단순한 단속 실패를 넘어 식약처의 관리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로 이어졌다. AI·플랫폼·글로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식품안전관리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데 여야가 뜻을 같이했다.
박주민 위원장은 “오늘 국정감사를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하는 업무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다시 한번 느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종합감사까지 정리해 보고하겠다고 약속하신 사안이 많은 만큼, 식약처가 꼼꼼히 점검하고 책임 있게 후속 조치를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