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기업, 소비자, 국가까지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전 인류를 덮친 코로나19 대유형이 잠잠해지기가 무섭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했고 튀르기예는 참혹한 지진을 이겨내는 중이다. 세계적인 경제둔화로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다. 오너의 성격과 자질, 상황, 운(運)기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인류사처럼 기업사도 일정한 주기가 있다. 이 세상에 없던 것, 혹은 익숙한 것에 혁신을 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형적인 것을 구체화시켜 유형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야한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직후나 고도화된 사회는 똑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물경제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유통기업으로 우뚝 선 기업의 오너들은 어떻게 회사를 일구어냈을까. 푸드투데이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오너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경기도 평택의 한 분유 공장, 하루 4만 캔의 분유를 생산하지만 이날 만든 분유는 단 1000개. 소요된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날 10분을 위해 공장은 약 열흘 간 분유 생산을 중단했다. 이 공장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매일유업이 만든다"
매일유업은 1년에 단 두 번, 희귀 질환으로 일반 분유를 먹지 못하는 아기들을 위한 특수 분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특수 분유는 일반 분유와 달리 공정이 까다로워 원료를 혼합, 제조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제품별로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 생산 설비를 세척하는데만 하루 24시간이 꼬박 걸린다.
수익은 커녕 매년 손실만 수 억 원대에 이른다. 만들수록 손해지만 매일유업은 지난 1999년부터 22년 째 국내에서 유일하게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매일유업이 특수 분유 생산에 나선 것은 고(故) 김복용 선대 회장의 지시 때문이다. 김 선대 회장은 한 대학병원에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을 만난 뒤 "단 한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들을 위한 분유 개발을 지시했다.
황무지를 초지로 개간, 낙농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다
김복용 회장은 1920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났다. 함남 북청 공립 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56년 공흥산업, 64년 신극동제분을 거쳐 69년 종합 낙농 개발사업을 목표로 설립된 정부 투자기업을 인수한 매일유업은 한국낙농가공이 전신이다. 설립 당시 농어촌개발공사는 사업자원인 차관의 순조로운 조달과 사업수행을 위해 민간자본과의 합작을 계획했다. 하지만 열악한 낙농 환경에 이윤이 많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기업인이 없었다.
정부는 김복용 회장에게 합작투자를 제의했고, 한국낙농가공 설립 2년 만인 1971년 김 회장은 이를 인수하고 매일유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김복용 회장은 특히 신용을 사업 밑천으로 여겨 성공한 사업가로 꼽힌다.
사업 초창기 호남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영세했고 농가는 젖소를 입식할 자금도 담보력도 없어 사업을 포기해야 할 실정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대상 농가들의 낙농에 대한 의욕과 신념을 믿고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알선했다. 상호 연대보증으로 젖소 입식 자금, 목장 개발 자금, 시설 자금, 초지 조성 자금으로 대출받은 뒤 공제, 적립을 통해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이로써 제1차 낙농개발사업 중 582농가를 시작으로 약 1500농가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단 한명도 소외받는 아이가 없게 하라"
김복용 회장은 우연히 한 대학병원에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을 만난 뒤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특수분유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선천성 대사이상은 100만 명 중 1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선천성 대사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환아는 국내 3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은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모유와 일반 분유는 물론 고기, 생선, 심지어 쌀밥에 포함된 단백질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식이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운동 발달 장애, 성장 장애, 뇌세포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20년 전에는 당시 가격으로 한 통에 6만 원이 넘는 해외 제품을 사서 먹어야 했다.
매일유업은 이들을 위해 1년에 단 두 번, 열흘간 생산 공장을 멈춘다. 일반 분유와 성분과 공정이 달라 모든 설비를 세척하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소요된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는들은 특수하게 제작된 분유를 먹어야 한다. 수도 적지만 환아들 마다 제한해야하는 성분이 달라 분유는 소량 다품종으로 생산할 수 밖에 없다. 김 회장은 "단 한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들을 위한 분유 개발을 지시했다.
사옥을 지을 돈이 있다면 공장을 하나 더 만들겠다
매일유업은 매출 1조6000억원대 규모로 성장했지만 사옥이 없는 회사로 유명하다. 김복용 회장은 평소에 "사옥을 지을 돈이 있다면 공장을 하나 더 만들자"라고 말했을 정도로 공장을 중요시 했다. 매일유업은 경기도 평택 중심의 중부권, 전라도 광주 지역의 호남권, 경상도 경산의 영남권 등 3곳의 낙농개발권으로 나눠 각각 현대적 유가공 공장을 건설했다. 당시 열악했던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3개 공장의 전략적 중요성은 매우 컸다.
1973년 준공된 호남공장(현 광주공장)은 장기 보존을 위한 테트라팩 포장제품 전문 생산 공장이다. 국내에 처음 도입한 무균포장으로 6주간 상온 보관이 가능한 테트라팩 우유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1974년 유아식 전문 생산 공장인 중부공장(현 평택공장) 설립으로 매일유업은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는 유아식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1978년 준공된 영남공장(현 경산공장)은 유산균 발효유와 유산균 음료를 생산한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각 공장의 생산설비 증설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유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에 힘썼다. 1999년에는 영동공장을, 2002년에는 가공우유·발효유 등 기능성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청양공장을 설립했다. 이어 2004년과 2006년에는 각각 국내 유일 치즈 제조 전문 상하공장과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분말제품 전용인 아산공장을 확보했다.
장사꾼이 아닌 기업가를 목표로
김 회장은 평소 김 명예회장의 신념인 ‘낙농보국’을 강조했다. 유가공 업체의 사명감은 남달라야 한다는 것. 1999년부터 지금까지 만드는 특수분유 사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매년 여름 진행하는 환아 가족을 위한 PKU캠프와 환아 가족 외식행사인 하트밀 캠페인에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또, 1975년에는 앱솔루트 맘스쿨의 시작인 ‘1일 어머니교실’을 개최한 이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년 무료 임신·육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해마다 3만명 이상이 참석해 지금까지 120만명이 넘는 예비엄마들이 다녀갔다. 이 외에도 장학 사업, 다문화가정 지원, 지역문화 육성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생 칠십 고래희(古來稀)라는데 나의 지난 시간은 ‘기업 삼십 고래희’였다.
30년간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경영했다.
그것이 매일유업의 사명이고, 해야만하는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사업은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닌 국민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공익 추구다.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 192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