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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칼럼> 코로나19와 데카메론

시골을 배경으로 놀고 있는 손자의 동영상이 카카오 톡에 떴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사돈이 사는 장호원 산골짜기 집이라고 한다. 수원에 있는 손자를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며느리가 친정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갑자기 어릴 적 어머니와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6.25 전쟁 시 우리 고향까지 점령한 북한군은 마을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든다며 남한 사회를 북한체제로 바꾸고 있을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경찰이고 삼촌은 군대에 갔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총살당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갓 태어나 가계를 이을 유일한 핏줄로 할아버지는 나와 어머니를 깊은 산 속으로 피신시켰다. 당시 죽음을 앞 둔 할아버지나 스무 살 남짓한 어머니의 전쟁에 대한 심경은 어땠을까?

아들내외가 코로나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전쟁이든 질병이든 인간은 생명을 위협당하면 살기 위해서 자구책을 구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가끔 위기에 부닥치는데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아니면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불행하게도 전쟁과 질병 등의 재난은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도 개인으로서는 벗어날 별 뾰족한 수단이 없다. 

중세시대에 페스트가 돌았을 때 유럽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했다고 하니 그 참혹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문득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떠오른다.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중세유럽의 잘 알려진 작품이다. 

1348년 이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에 무서운 페스트가 유행하게 된다. 유럽전역을 휩쓴 일명 흑사병은 피렌체에서만도 10만 명 넘게 사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렌체의 젊은 귀부인 일곱 명이 젊은 신사 세 명과 함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만나 페스트를 피해 교외의 별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거기서 열흘 동안 하루에 각자가 한 가지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지낸다. 그리고 날마다의 주제에 따라 성직자의 타락, 다양한 사랑 이야기, 비극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민담 등의 토크쇼를 하게 된다. 보카치오는 페스트의 참혹한 도시현장을 잠시 피해 떠난 젊은 남녀들의 이러한 이야기를 데카메론에 담고 있다. 

마침 이태리에서는 중세의 페스트처럼 감염병환자의 폭발적인 증가로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다. 그 간은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코로나19 유명세를 떨쳐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입국을 제한당하고 있는데 이제는 2위 자리를 이태리에 양보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에 위로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태리나 한국, 두 나라가 모두 중국과의 교역이 많은 국가로 중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 감염병 환자 수를 대폭 늘린 나라들이다. 발병 초기에 두 나라가 똑 같이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다가 대규모로 발생하자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비교적 환자에 대한 신속한 진단과 격리를 통해 진료를 조직적으로 수행하여 이제 고비를 넘기고 있으나 이태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코로나19의 경우에도 페스트 감염이 한창일 때 데카메론의 젊은 남녀들처럼 질병이 유행하는 현장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전쟁이 발발했다면 당연히 국가나 개인은 모든 경제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코로나 감염병이 어느 정도 잠잠할 때까지 정부는 인간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환자 진료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제, 사회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 환자를 느슨하게 관리한다면 정부는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고 만다. 일본의 아베정부가 정권 유지나 올림픽 개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코로나증상 환자의 진단을 소극적으로 한다면 결국 일본정부는 정권도 놓치고 올림픽도 치루지 못하는 형국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미꾸라지 아베, 코로나19 못 빠져나가... 사임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나타날 또 다른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더욱 인간을 괴롭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들을 때 정부는 코로나변종의 감염병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를 깨닫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의 감염병관련 법규가 현실과 동 떨어진다면 현실에 맞게 보다 적극적으로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면 감염현장을 피하게 하는 것이 상책임을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행동해야 할 때 행하지 않는 부작위가 죄가 되는 수가 있지만 역으로 부작위가 문제를 푸는 해법이 될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태리 정부도 중세유럽시절 데카메론의 주인공처럼 사회적 거리를 두거나 봉쇄정책을 내린 결단이 위기를 타개하는 현명한 대책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솔로몬왕의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코로나19는 분명히 곧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훈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자만하거나 자못 욕심을 앞세운 나머지 고통을 겪고 많은 생명을 잃게 한 데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우리 앞에 변종바이러스가 닥칠 때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바로 대비할 수 있는 비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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