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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주범’ 누명 씌운 고위 공무원

농식품부, 사실 확인하고도 뒷짐만…본인은 영전으로 혜택 누려

민사소송 패소하고도 항소…피해자 인권에 무감각한 정부 전형 보여줘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하루아침에 수입된 중국산 건초로 사료를 제조해 구제역을 퍼뜨린 못된 업자로 둔갑하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누명을 씌운 사람은 아무런 책임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심한 작태다. 지난 201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화구제역 발생사건 당시 한 공무원의 면피성 발언으로 멀쩡한 사람을 강화 지역사회를 망쳐놓은 주범으로 몰아간 일이다.

 

그 허위발표로 인해 한 달이 넘도록 매도당했던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사과한마디 없이 허위발표자는 영전하고 후임자들은 할 도리 다했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공무원의 얼굴이다.

2010년 4월 구제역 발생 후 2년이 지난 최근 강화에서 만난 전태호(69)씨는 아직도 분이 안풀린듯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전 씨는 최초 구제역 농가로 알려진 강화군 선원면 이중재씨 집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서 2002년부터 종합사료인 TMR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씨에게 ‘구제역 주범’이란 ‘누명’이 씌워진 것은 2010년 4월 10일. 구제역 농장주인 이 씨가 중국산 건초를 수입했고, 강화의 티엠아르 사료공장에서 그 건초로 사료를 만들어 공급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가까운 이웃인 이 씨 집에서 구제역이 처음 확인됐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을 채 쓸어내리기도 전에, 저를 비난하는 소리가 쏟아져 오더군요. 중국산 건초로 만든 제 사료 때문에 강화 소들이 구제역에 걸렸다는 겁니다. 축산 농가는 물론이고 구제역으로 손님이 끊긴 요식업계와 관광업계에서도 난리였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전씨는 ‘오보’를 낸 일부 언론사 기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농림수산식품부가 자신을 ‘구제역 주범’으로 만든 진원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강화 구제역이 발생한 2010년 4월 9일 공식 브리핑에서 △최초 발생 농장주인 이 씨가 구제역 감염지역인 중국을 다녀왔으며 △이 씨가 중국산 건초를 수입해 근처의 티엠아르 공장에 납품했다고 밝히면서, 그 두 가지가 감염 경로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씨가 중국을 다녀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씨가 중국산 건초를 수입했다거나 제가 그 건초를 썼다는 부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저는 명예와 신용을 잃고, 화병으로 건강도 엉망이 됐습니다. 고려 말부터 600년을 대대손손 강화에서 살아왔는데, 조상님 뵐 면목도 없습니다.”

 

전 씨가 더 억울해하는 것은 농식품부의 이후 태도다. 전 씨는 당시 두 차례 농식품부 장관과 축산정책관 앞으로 “누명을 벗겨 달라”는 서신을 두 차례 보냈지만, 아무런 공식 답변도 듣지 못했다. “잘못이 있으면 즉시 바로잡는 게 공직자의 온당한 자세 아닌가요? 제 잃어버린 신용은 어디 가서 찾습니까?”

 

당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공무원(축산정책관)은 지금, 당시의 공(?)을 인정받았는지 농림수산식품부 산하기관의 원장으로 영전해 태연히 업무를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방역총괄과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건초 수입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이미 역학조사 중간발표와 공문회신을 통해 발표했고, 수차례 유선과 방문을 통해서도 해명했다”며, “구제역 살 처분 농가 외 농축산 관련 업체에도 충분한 지원과 보상이 이루어져 추가적인 별도의 조치나 해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씨의 공식사과 주장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농림식품부는 형사소송에서 무죄로 판결이 났다는 근거로 할 일 다 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민사소송에서 1000만원의 배상금이 결정되자 항소로 맞대응하는 등 허위보고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고 피해자 인권에는 무감각한 정부 당국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구제역 허위보고는 이번 국감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은 24일 진행될 농림수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전태호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청취하고 당시 허위 발표한 공무원이 농림식품부 산하기관장인 만큼 참석이 확실해 보여 사실규명을 하는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