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도 이천 샘표공장에서는 창립 65주년 기념 ‘샘표 D-Factory 展’전시회 개막식이 개최됐다.
이는 ‘샘표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간장 생산시설인 샘표 이천 공장을 대형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는 지난 1년여의 진행과정과 의미, 샘표의 기업철학 등을 샘표 임직원을 비롯한 협력업체 관계자,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최초의 연구실, 최초의 CM송, 최초의 네온사인 광고, 최초의 PET용기 사용, 식문화공간인 지미원(知味園)을 비롯해 문화 갤러리 샘표 스페이스 등 ‘최초’가 많은 샘표는 업계 최초로 ‘공장견학’을 실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신식 설비와 공정 시스템에 이어, 아트 팩토리로 새롭게 변신한 샘표 간장공장을 통해 샘표 직원과 공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힌 박진선 대표.
기업의 존재 이유는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직원들이 행복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온기를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진선 대표로부터 샘표아트 팩토리 프로젝트와 기업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행복한 일터 만들기, 경영 가치 실현'주력'
우리 식문화 알리는 문화기업으로 탈바꿈
▲‘샘표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됐나.
-공장은 3년에 한 번씩 외벽 회색으로 칠한다. 관리하기에도 편하고 지저분해도 티가 나지 않는 색으로 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회식 페이트칠이 무미건조해 보였다.
관리하기 편하라고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회색공간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이 온통 무채색인 환경에서 직원들의 마음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공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통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다. 기왕 칠하는 김에 비용이 더 들더라고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고 그래서 ‘샘표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변신한 간장공장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린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진 아티스트 그룹 ‘동방의 요괴들’과 함께 기획했다. ‘동방의 요괴들’은 ‘아트 인 컬처’가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샘표는 신진 작가들 중 6명의 작가를 선발해 간장공장 4동을 새롭게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곡물보관탱크는 작가 그리마의 작품으로 공장 굴뚝과 곳곳의 문, 그리고 저장탱크에 다양한 표정의 아이콘을 그려 넣었다.
생산동과 연구소는 이우리 작가 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테마로 작품화한 것이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문에는 행운의 열쇠, 네잎클로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문을 통과할 때마다 행운이 전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동력동은 나광호 작가 작품으로 낙서, 어린아이 스케치 등을 소재로 했다. 샘표 직원들의 낙서와 견학 온 어린이들의 스케치를 이용해 가장 순수한, 내재되어 있는 깨끗함을 표현했다. 이는 이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깨끗한 맛과 품질에 대한 샘표의 의지이기도 하다.
포장동은 작가 정지윤이 우리 옛 민화 속 십장생도 속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사는 산, 물, 돌, 소나무, 학, 사슴 등을 새롭게 재해석해 65년 동안 이어온 오랜 역사성과 나아가 샘표의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작가 정영구는 공장의 다양한 사진작품을 작가 김태윤은 공장의 변화되는 모습을 영상작품으로 재해석했다.
▲공장 외부의 변신 못지않게 간장공장 내부에 마련된 문화갤러리 ‘샘표 스페이스’도 신선하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샘표 스페이스도 그렇고 국악 공연 후원도 그렇고 모두 직원들은 염두 한 것이다. 예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직원들에게 예술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전시 공간인 샘표 스페이스가 식당 옆에 위치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샘표 스페이스는 점심시간에 전시 오프닝을 개최한다. 직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작품을 보고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문화 활동이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에 어떠한 효과를 미치는지 측정할 수 없지만 예술작품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조금씩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샘표가 올해로 창립 65주년을 맞이했다. 얼마 전 특허청에 등록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표로 샘표가 선정되기도 했다. 장수기업 샘표의 장수비결은 무엇인가.
-기업이 오래 지속했다는 것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바르게 성장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거다.
그런 기업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에 작지만 큰 행복을 주고, 또 그런 기업에서 일하는 구성원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샘표의 장수비결은 할아버지(故 박규회 사장)가 남긴 기본 철학이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인화.신용.봉사’를 샘표의 사훈으로 정했다.
언뜻 보면 학교의 교훈 같은, 기업의 사훈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지만 항상 검소하고 성실하고 신용을 지키셨던 할아버지의 철학이 바탕이 됐기에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박 대표도 故 박규회 사장의 영향을 받았나.
-옛날에는 간장 담는 병이 아주 귀했다. 그래서 1970년 때만 해도 병 수급은 중요한 문제였다. 보통 맥주병을 썼는데 여름에는 수급이 달려 간장 회사에 병을 주지 못했다.
공장에서는 수거해 온 병은 다시 씻어 간장을 넣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 일용직이었는데 원조 자금으로 병 자동 세척 주입기가 들어와 꼼짝없이 그분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그때 기계가 들어오기 바로 전날 할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그분들을 모두 정사원으로 발령을 내버렸고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던 사건이 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분이셨고 나 또한 그러한 부분을 본받아 실천하고자 한다.
▲샘표를 ‘식품기업’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문화기업’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1990년대 중반까지는 산업화시대였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적은 비용으로,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시기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는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람들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겼고 그러다보니 양질의 것들을 찾게 됐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인 1997년 샘표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그 무렵 샘표 역시 산업화 시대에 맞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 기업이 할 수 있는 제품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한국 음식문화의 기초가 되는 간장.된장.고추장이었다.
우리가 장맛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한국 음식의 맛이 결정되는 만큼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샘표를 ‘식품기업’으로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샘표는 엄연히 ‘문화기업’이다. 물론 단순히 사옥 내에 그림이 걸려 있거나, 음악회를 여는 등 눈으로 보이는 측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샘표가 하는 일 자체가 식문화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기업이라 말하는 것이다.
▲샘표만이 가진 메세나 철학은.
-기업은 사회가 원화는 재화나 서비스를 창출해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일을 한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하나의 조그만 사회를 이루게 되고 그 사회의 구성원인 직원들이 어떻게 그 안에서 살고 느끼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기업의 구성원, 즉 직원들의 행복에 가치를 두고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기업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 사업을 한다고 하면, 외부에 문화적인 행사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를 후원하지만 정작 기업 내부 직원들에게는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한다.
샘표는 공장 옆에 콩밭을 만들어 친환경적인 활동을 펼치고, 동시에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준비했다. 또 공장을 찾은 사람(소비자)들에게는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음악, 미술이 있는 공장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아파트 부녀회 같은 장년층이 공장을 주로 찾았는데, 근래 들어서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방문하거나, 젊은 세대들이 공장에 사진 찍으러 오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듯하다.
우리 직원들을 위해 만든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성 있는 울림을 파생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