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를 비준한 데 이어 2007년에는 한-미 FTA를 체결했다.
또한 EU와 중국 등 거대경제권을 비롯해 인도와 캐나다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FTA 협상이 진행 중에 있거나 검토 단계다.
FTA는 세계경제의 개방화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라남도 같이 1차 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은 농업 부문의 피해를 걱정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농업의 맥이 끓기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현실적으로 우리 농촌의 성장 잠재력은 점차 소진되어 가고 있다. 지난 30년간 농가 인구는 4분의 1로 감소했으며 2008년 국내총생산 중 농업생산액은 3.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농촌의 40세 미만 젊은 노동력은 연평균 13.6퍼센트씩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쏟아 부은 예산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농어촌 구조개선 대책(42조원), 농촌 발전대책(45조원)등 130조 원을 투입했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19조 원 투·융자 사업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파상적인 지원에도 우리 농촌의 경쟁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퇴보에 퇴보를 거듭해왔다. 중장기 비전 없이 선심성으로 지원한 결과다.
‘고시히카리’라는 쌀로 유명한 니가타 현 오우누마 지방에서는 한국 농촌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논 한가운데 외딴 집이 수없이 많다. 그것은 그 집이 경작하는 농지가 넓다는 뜻이다.
농촌의 살림살이가 넉넉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은 농촌 평균소득이 도시평균 소득보다 20퍼센트 정도 높다. 한국은 그 반대다. 농촌 평균 소득이 도시 평균 소득의 80퍼센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농업에 정말 희망의 싹이 없는 걸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농업(1차산업)에 제조업(2차 산업)과 서비스업(3차 산업)을 연계해 6차 산업으로 가는 길이다.
농사는 작목별로 특화시키고 공장을 지어 가공을 한 다음에 판매유통 혁신으로 브랜드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거기다가 농촌의 어메니티(Amenity:인간에게 만족감을 주는 쾌적한 환경)요소를 한데 묶으면 농민들이 부자 되는 것은 물론 세계적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
6차 산업화의 효시는 일본 후나카다 협동농장이다. 이곳은 농업현장이 아니다. 농산업 실습장이며 생산·가공·판매·교류를 복합농산업단지다.
가공 과정을 투명유리로 완전히 공개했을 분 아니라 판매 시스템도 도시의 대형마트 못지않다. 또 작물 재배·가공 과정을 체험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후쿠오카 시 서구에 있는 수센지 구락부는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먼저 유명하다는 ‘가메니빵’. 후쿠오카시에서 생산된 농축산물로 만든 빵으로 2007년 후쿠오카 시 특산품으로 지정됐다.
수센지 마을은 인구 1만5000여 명으로 우리의 동 크기다. 여기서 237개 농가가 가공식품 산업의 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 농산물로 만든 가공식품은 오뎅·오리고기·국수·두부 등 10여종. 다들 인기가 있고 수입도 짭짤하다. 최근에는 유채꽃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유채꽃을 피워 화객들을 불러 모아 소득을 올리고, 그 까만 유채씨로는 기름을 짤 계획이다.
그러면 지역 농산물을 팔면 되는데 왜 힘들게 가공식품까지 만들까?
가공 식품을 판매하면 원재료를 팔 때보다 3배가량의 수익을 더 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락부의 회원들도 농민뿐만 아니라 상공업자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수센지 마을의 예에서 보듯 농업이 6차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농민들만으로는 곤란하다.
최근에 사회 전반적으로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농사 잘 짓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농사 말고 다른 것을 잘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전공과 장점을 살리라는 말이다. 이것이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바꾸는 인적자원이다.
도시 출신은 사무와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나다. 또 오랫동안 갈고닦은 전문분야가 있다. 게다가 도시인의 성향을 농민들보다 잘 안다.
이렇게 잘 하는 것을 살리는 게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래야만 농산물의 가공과 유통은 물론 교육, 문화, 복지 ,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농촌 주민과 공생하며 살아나갈 수 있다.
이렇게 농업을 6차 산업화 하고 인적자원을 갖춘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다. 사실 이 개방화 시대에 우리 농업의 규모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농촌의 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첫 단계로 농식품 산업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규모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눈에 뛴다.
2006년 기준으로 국내 식품 R&D 투자규모는 약 34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전체 식품산업 매출액 대비 0.3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서도 극히 낮은 수준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7년까지 농식품 산업을 중심으로 식품분야 R&D 투자규모를 전체 식품산업 매출액 대비 2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생산단계에서 수출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R&D 투자를 확대해 생산성을 높이고 민간자금을 동원해서 6차 산업형 수출을 전담하는 대규모 농어업 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대형마트들이 농축산물 위탁생산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큰 방향에서 틀리지는 않다. 다만 너무 규모를 앞세우다 보니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만 투자가 몰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시장에서 사랑받는 농업 콘텐츠들을 함께 육성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양계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넓은 땅에 현대식 설비를 지은다음 공장처럼 대량으로 생산하면 가격경쟁력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규모의 논리에 매몰돼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쓸 경우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은 사라진다.
좀 작은 규모라도 조개껍질, 게껍질, 개구리, 지렁이 등으로 사료를 만들고 그걸로 사육한 닭이라면 노년층 소비자들은 몇 배 가격이라도 주고 사먹게된다. 닭고기든 달걀이든 보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실버농업이다. 콘텐츠가 가진 힘이다.
콘테츠를 도입하면 타킷이 명확해지고 상품도 다각화된다. 얼마든지 현대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규모만 앞세우면 몇몇 사람만 돈을 번다.
하지만 콘텐츠에 투자하면 훨씬 많은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