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대법원 앞에는 수 백 년 된 향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구청에서 관리하는 아름다운 꽃밭이 가꾸어져 있다. 화창한 날씨에 입체적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꽃들을 위해 때 마침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차 창을 열고 꽃밭을 보았다.
그때 벌 한 마리가 열심히 꽃 속을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넓은 꽃밭 속에서도 움직이는 벌 한 마리는 금방 눈에 들어온다. 그 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도심 한 복판에 어디서 날아온 벌일까. 어디에 사는 벌일까? 왜 혼자 왔을까?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꿀벌이 없어졌어요”라는 기사가 생각났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꿀벌의 숫자가 격감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꿀벌이 없어지면 식물들이 씨받이를 할 수 없게 되어 세계가 머지 않아 멸망한다는 것이다.
저 정도의 꽃밭이면 많은 꿀벌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어야 할 텐데 한 마리 밖에 볼 수 없으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꽃들은 씨를 잉태하기도 전에 꽃이 지면 바로 갈아 엎어질 운명이라서 씨받이가 필요 없다는 것을 벌들이 알아서 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무실 앞 독서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벌침 놓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매일 벌을 잡아 벌통에 넣고 다니며 신경통이 있는 사람들에게 벌침을 놓아주는 것으로 벌이를 한다. 벌침 한 방에 벌 한 마리가 필요하다. 벌은 침을 쏘고 나면 죽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벌을 충분히 잡으려면 점점 더 멀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벌은 줄어드는데 왜 모기는 늘어나는 것일까.
옛날 어른들이 모기는 서리가 내릴 때가 되면 입이 비뚤어져서 물지 못한다고 했는데 요즈음의 모기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가축들이 있어서 사람 피가 아니어도 피를 빨 데가 많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서울에서는 모기 한번 물리면 모기향에 에어졸에 요즈음은 전기 모기채까지 나와서 잡아버려 먹을 새가 별로 없을 텐데 늦가을 또는 한겨울에도 모기를 많이 본다. 모기들은 물만 먹고 살아서 그런가.
새들도 늘어나는 새와 줄어드는 새가 있다.
요즈음 눈에 띄게 줄어든 대표적인 새가 제비이다. 지난 번 동해안에 갔다가 전선 위에 길게 늘어져 앉은 제비들을 보았다. 제비에게 특별히 신경 쓰면서 산 것도 아니었기에 없어진 것도 몰랐고 따라서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비를 집 동네에서 본지가 몇 년 만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울의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전기 줄을 지하로 묻어 버려서인지 모르지만 여러 해 못 보았던 것은 틀림 없다. 그런데 제비 같은 건 없어져도 세상이 괜찮은 것일까? 모르겠다.
반대로 쓰레기통 뒤지는 비둘기는 숫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쓰레기를 뒤지기로 마음만 먹으면 먹을게 많아 그럴 수 있겠지만 까치는 어떻게 늘어난 것일까. 사무실 창문 앞 베란다에 내어 놓았던 화분이 죽어가는 이유가 까치가 와서 잎을 다 쪼아 버려 그렇다는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서 먹을 것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까치가 화분의 잎을 쪼아 먹는 것은 처음 보았다.
지난 주에는 서울 근교에 나갔다가 작은 풍뎅이(이름은 모르지만 풍뎅이같이 생겼기에 이렇게 불러본다)가 수없이 날아다니는 걸 보았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걸어가는 중에 콧구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수없이 얼굴에 부딪치기도 했다. 많은 숫자가 교미 중인 것으로 보아서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런 곤충을 잡아 먹는 새가 제비나 참새 같은 새들이 아닐까. 공해로 새가 줄어들면서 곤충이 늘어나고 그 곤충이 먹이용 식물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면 생태계에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변화를 빨리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커다란 댐이라도 아기 오줌 줄기 같이 작은 물이 새는 곳이 있다면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잠자리와 제비 꿀벌같이 수 백 년 익숙하던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재앙의 미세한 시초일지도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그 원인을 찾아 대책을 잘 세워야 할 것이다. 요즈음은 살아가는 모든 게 불안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