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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칼럼-망가지는 노인들

얼마전인가 순박해 보이던 70대 노 어부가 알고 보니 비정한 살인마였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바다에서 일생을 보낸 노인네가 젊은이들을 배 위에 태우면서 풀지 못한 욕정 때문에 정신이 뒤집혀 벌인 일과성 살인사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와 노인에서 보았던 좋은 노인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아픈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번의 남대문 화재 사건의 범인이 또 70대 노인이라고 하니 세상이 거꾸로 되어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나이 70이면 이미 인생을 알만큼 알게 되고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게 되는 나이일 텐데 왜들 그러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젊은이가 죄 짓는 경우보다 처벌을 가볍게 해 주었다던데 이유는 오죽하면 저토록 늙은 나이에 그런 죄를 지었겠느냐 하는 동정의 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70대 노인이면 범죄에 물들었던 사람들도 빠져나올 나이이고 주위의 공경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범죄와는 거리가 있는 그런 노인의 삶을 사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런데 노인의 대명사인 70대가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이제 나이 먹었다는 사실 하나로 대접 받던 시대는 완전히 가버릴 것 같다.

 예전 농업이 중요하던 시절에 계절을 아는 것은 일년 농사의 성패에 가장 중요하였었고 젊은이들은 모르면 노인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또한 연공서열이 중요하던 때에는 회사에 새로 들어온 사원이 고참이나 나이 많은 분들에게 물어보고 배워가며 일을 해야 했다. 나이 드는 것도 꽤 괜찮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품이 되어가면서 나이든 사람들은 컴퓨터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업무 효율을 따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인생 유효기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이 순으로 우수수 내몰렸고 비로소 나이 더 먹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버렸다.

 옛말에 “불치하문”이란 교훈의 뜻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인데 아마도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보통은 부끄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항상 아랫사람들에게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니 부끄러울 것까지는 없다 해도 노인들에게는 불편한 세상이 된 것이다.
 
 평소 참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애써 참으면서 일생을 살아 온 노인들이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상 각종 기사에 심한 악성 리플을 다는 것을 볼 때도 있다. 그들이 쓰는 맞춤법이나 어투 또는 묻어 나오는 세월의 냄새를 맡아보면 초딩인지 노인인지 대충 알 수가 있다.

 그들이 일생 참아온 분노를 이런 곳을 통하여 분출하는 것을 볼 때, 안쓰럽기도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세계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돌진하는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노인세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존경심을 얻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미래에 그들이 기꺼이 높은 부담을 하며 참아낼 이유가 없다.
 
 노인 스스로의 자립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지만 나이 들수록 결국은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에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부담이 덜 되도록 무언가 경제 활동에 기여하려고 노력도 하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존경심을 잃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항상 바르게 하여야 한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이면서도 누구도 처음으로 겪게 되는 것이어서 연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육체의 늙음에 맞는 새로운 자세를 익혀야 하는데 변하는 환경을 미처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으면 엉뚱하게도 남대문 방화 사건과 같은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의무교육을 넓혀서 노인이 되면 일정기간 노인으로서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지 교육을 시켜 주면 좋겠다. 노인의 범죄율이 높지는 않아도 극악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노동력과 자립 능력이 소멸 되 가는 노인들이 사회에서 천시 받는 그런 때가 오는 것도 두렵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결국은 늙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