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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7]고종황제의 기쁨 '가비'가 모던보이의 '양탕국'이 되다...커피 1편

국내 커피시장규모, 2014년 5조 4000억대에서 2017년에는 11조 7400억 기록
커피 애호가인 고종 거쳐 빠르게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아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물'같은 음료다. 커피로 해장하고 식사 후 커피 한 잔하고 회의하면서 미팅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 안옥윤이 된 전지현은 경성으로 가면 뭘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커피라는 것도 마셔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였다. 연애와 커피를 동급으로 칠 정도로 커피에 대한 동경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20년 현재 한국은 커피 수입국가에서 세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커피시장규모는 2014년 5조 4000억대에서 2017년에는 11조 7400억을 기록했다. 한 해에 15만 9309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원두를 수입하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어떻게 커피공화국이 됐을까? '커피'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은 '고종'이다. 고종황제는 널리 알려진대로 1895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

 

이 커피를 처음으로 선보인 인물은 안토니엣 손탁이다. 그녀는 웨벨 러시아공사의 처형으로 공사가 부임할 때 따라 들어와 명성황후 시해 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한 고종황제를 가까이서 수발을 들었던 여인이다.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한 고종은 이 때 극도의 노이로제로 주변 사람들을 불신했다. 그래서 수라상도 한국사람이 아닌 웨벨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안토니엣 손탁이 차린 음식들만 먹었다. 양식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커피에 맛을 들이게 된 것이다.

 

1885년 조선에 오게된 그녀는 독.불 접경지역인 알사스 출신답게 독일어,불어,영어가 능통했다. 당시 32이세였던 손탁. 1896년 아관파천 때 이미 우리말까지 능숙하게 구사할 만큼 영민한 그녀였다.

 

1988년 인천항의 숙박기관인 대불호텔에서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고종은 손탁을 신임하여 러시아공사관 입구에 호텔을 짓고 그녀에게 주었다. 손탁은 2층 양옥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아래층에 식당 겸 커피숍을 열었다. 이 커피숍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 병합을 위한 모사를 꾸미기도 했다고 한다.

 

손탁의 커피숍에는 민영환, 이상재, 이완용, 윤치호 등 외국에서 커피 맛을 들인 개화파 인사들도 자주 드나들며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니 손탁 호텔의 커피숍은 기구했던 한국 근대사의 산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커피는 ‘가비’ 내지 ‘가배’ 혹은 ‘양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커피 애호가인 고종을 거쳐 커피는 빠르게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모던보이와 모던걸, 이른바 지식인들의 기호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커피 애호가였던 시인 이상은 1930년대 서울 종로에서 ‘제비 다방’을 운영할 정도였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 관련 기록을 남긴 외국인은 미국의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P.Lowell(1855~1916)이다. 당시 동양문화에 심취해 있었던 그는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민영익,홍영식,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안내하는 임무를 맡고 왕실의 초청을 받아 그 해 12월 왕실의 초청을 받고 조선에 머물게됐다.

 

로웰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에서 "1월의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고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가게 돼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치를 즐기며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셨다"고 기술했다.

 

수줍다는 듯 세상에 꽁꽁 감춰진 아시아의 작은 나라, 유난히 까맣던 조선의 그 겨울 밤하늘, 그래서 더 빛나게 느껴지는 달과 별,  천문학자인 로웰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서히 꺼져가는 불빛이 될 조선의 명운을 예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