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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 칼럼> 칼로리가 뭐길래

밀레의 대표적 작품 <만종>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농부 부부가 등장한다. 만종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저녁 종소리에 맞춰 기도드리는 순박한 농부 부부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 감동이다.


그런데 그 옆에 바구니가 놓여 있다. 감자나 밭 일 도구가 담겨 있겠거니 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바구니에 사랑하는 아기의 시신이 들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 만종은 죽은 아기를 묻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가난한 농부 부부를 그린 그림이다.


우리나라에도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죽어가던 아이 앞에서 통곡을 하던 어머니들. 그들의 인생은 그 때  이미 끝이 났다. 남은 자식들 굶겨 죽이지 않으려 몸이 부셔져라 일을 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의 50대 이상에서는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가슴 먹먹해지는 사연이다.


궁상맞게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왜 꺼내나?


없어서 사랑하는 자식의 생명을 빼앗아갔던 칼로리가 이제는 너무 많아서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장난질 하는 칼로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인간은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화학 공장이다. 각각의 세포가 고유한 자체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생명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포들은 칼로리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따라서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칼로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함유되어 있다. 바로 열량 영양소인 당질, 단백질, 지방과 같은 고분자화합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량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여,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칼로리도 섭취할 수 없었다. 몸에 있는 체지방, 체 단백질을 다 부수어서 사용해도 바닥이 났고, 결국은 아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똑똑한 머리는 칼로리가 많이 함유된 식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대량 재배, 대량 제조, 대량 유통 시스템으로 인류의 오랜 숙원을 풀어 주었다. 정말 배부른 세상이 되었다. 모든 근심 걱정이 해소되고, 맘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런데 마음껏 먹은 칼로리가 말썽을 부릴 줄이야! 하나 하나 몸에서 지방 덩어리로 변하더니 나가지를 않고 계속 남아 있는게 아닌가? 야식으로 라면 한 개 뚝딱했더니 2시간이나 걸으라고 한다. 누가 그 짓을 하겠는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자기를 반복했더니 일주일 만에 체중이 0.5kg 늘고, 한 달 계속했더니 2kg, 일년이면 24kg 증가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오가는 길에 줄지어 있는게 온갖 모양과 맛으로 멋을 부린 칼로리들인데… 어쩌란 말인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힘들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다투던 기억이 난다. 다른 애들은, 호랑이가, 아니 사자가 등등 무서운 동물들을 나열하는데 우리 아들 왈 ‘에이즈’가 제일 무섭다고 해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무어냐고 물으면 칼로리로 인한 비만이라고 답할 것 같다. WHO는 비만을 암보다 치료하기가 어려운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고 규정하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전쟁이나 테러가 아니라 바로 이 칼로리로 인한 비만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비난의 화살은 신에게로 향한다. 신의 최대 걸작품이라고 하는 인간의 몸에 칼로리를 배설하는 시스템을 왜 만들어 놓지 않았느냐고. 여기에 대한 신의 답은 단호하게 No이다. 인간이 포식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명체인 음식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에 대한 명백한 경고이다. 이제 인간은 신과 겨루려 한다. 각종 다이어트 비법을 내놓으며 살 찐 사람들을 부추긴다.


얼마 전 의사들까지 가세한 고단백 저당질 다이어트, 일명 고기 다이어트이다. 매스컴에 나온 어머니는 아들에게 양복 입혀 교회 같이 가는 게 소원이라며, 이 다이어트에 새 희망을 걸었다.


열심히 고기만 먹고 있을 아들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힌다. 칼로리의 과잉 섭취가 원인인데 엉뚱한데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 이상한 다이어트 유행들이 현대인의 몸을 더 망가뜨리고 있지나 않은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