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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맛1] Invitation from Okinawa-심야식당 텐조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2020년 대한민국의 공식은 문.이과 명문대를 나와도 '치킨집'과 '편의점'으로 결론을 맺는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킬링타임용 영화 '극한직업'에서도 류승용은 "어차피 할 치킨집, 몇 년 일찍 하게 됐다고 생각하자"면서 자신의 처지를 다독인다. 직장인들에게 치킨집은 상징적인 의미다. 현재 국민 78명 중 1명이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너도나도 외식업에 뛰어들면서 외식업계는 현재 포화 상태다. 전쟁터같은 이 곳에서 도태되지 않고 경쟁력있는 매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3년 내에 망하지 않는다면 비로서야 전반전이 시작된다는 외식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2017년의 초여름, 오키나와를 여행했었다. 내가 추억하는 그 해 5월의 오키나와는 다니는 곳마다 볼 수 있는 잉어 깃발인 코이노보리.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 일본같지 않은 이국적인 따가운 태양볕, 청량한 오리온 생맥주로 마무리된다.

 

무더위와 마감에 지쳐가고 있던 6월의 어느날 밤. 하얀 비둘기가 느닷없이 날아와 "일상에 지친 당신을 오키나와로 초대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초대장을 전달해 주고는 다시 날아갔다. 발신자는 텐조. 장소는 북가좌동이었다. 도대체 이 곳은 어떤 곳일까?

 

6호선 증산역에서 하차한 후 일본의 시골마음만큼이나 아기자기한 동네를 지나다보면 일본의 한적한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알록달록한 벤치가 나온다. 그 문을 열자마자 시공간을 넘어온 듯 정말 오키나와의 뒷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선술집이 펼쳐졌다.

 

"이 곳은 정말 오키나와일까"하면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텐조를 이끌고 있는 이정민 셰프가 다가왔다.

 

 

동화같은 텐조의 철학에 더해진 동화같은 사랑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돈까지 벌 수 있어서 행복할 따름이죠." 텐조의 이정민 셰프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명언을 좋아한다. "정치적인 색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무슨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내는 법 같아요. 작게 나마 사업을 하다보니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도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격언이 와 닿아요. 저도 텐조를 이끌어 가는 동안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일단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외동아들의 이미지를 가진 이정민 셰프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장애물을 디딤돌 삼아 오픈한 업장이 바로 텐조다.

 

 

"귀한 외동아들로 자라서 철 없고 부족함이 없던 중학생 시절 이 세상에 어머니와 저만 둘 만 남게 됐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철이 들었던거 같아요. 어머니는 항상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셨고 제가 어머니가 원치 않는 길을 걸을때에도 다그치시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그윽한 향기를 가진 분이세요. 그 때 하나 뿐인 아들인 제가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한다는걸 배웠죠. 십대시절부터 20대까지 리어카의 귤장사와 핫바, 그리고 빈티지 의류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었던 거 같아요."

 

어린나이에 느껴졌을 세상의 단단함에 맞서려고 고생과 서러움을 겪었을텐데 모험담을 이야기하듯 그의 눈은 반짝인다. "세상공부를 많이 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흥하기도하고 망하기도 했어요. 전 제 경험이 그래서 더 소중한거 같아요. 넘어져도 두려움 없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요?

 

 

3년 전 오픈한 텐조는 이 셰프의 감성으로 꾸민 특유의 인테리어에 좋은 재료를 공수해 만든 손맛이 더해져 북가좌동의 명소로 떠올랐다. 텐조는 웨이팅 리스트가 심한 날은 100팀이 대기하는 날도 있다. 이정민 셰프는 대기손님을 위해 맞은편에 '텐조이'라는 오락실도 마련했다.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진심이 통했구나 생각도 하고요. 멀리 일본에서 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제 감성을 이해해주시는 손님들과 텐조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한다는 것은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같아요. 물론 업장을 오픈하고 제대로 쉰 적도 없고 머릿속은 신메뉴 개발과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어서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이지만 저는 너무 행복해요."

 

주류 리스트를 새단장하고 주류를 시켜야 이익이 남는다는 기자의 조언에 이 셰프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이 곳은 편하게 어른들도 오실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가족손님이 어린아이를 데리고와서 식사만 하셔도 좋고 오리온맥주로 목을 축이셔도 좋아요. 제가 생각하는 장사의 기본은 손님의 만족이지 이윤이 아닙니다. 물론 많이 남는다면 저희도 좋겠죠. 그렇지만 저는 손님과 소통을 하고싶어요. 고객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장삿속으로 하는 업장은 언젠가 탄로가 나기 마련입니다."

 

 

나의 오른팔, 같은 꿈을 꾸는 너는 내운명

색채감이 예쁘고 메뉴도 다양한 텐조지만 이 곳을 이정민 셰프 혼자서 이끌었다면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오른팔'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28살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 곳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예쁜 얼굴. 활발하고 웃는 모습이 특히 예쁜 그녀는 첫 눈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9살이나 어린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어요.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끝에 사귀게 되었고 함께 일하게 됐죠. 지금 저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에요. 그녀가 없는 삶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정민 셰프가 무한한 신뢰감을 표시하는 그녀는 그의 오른팔이자 여자친구인 송 셰프다. 송 셰프는 텐조를 핫한 업장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대부분의 메뉴구성을 함께 구상하고 조리를 하는 앳된 외모의 송셰프는 "처음 텐조를 오픈했을 때는 칼에 베이기도 하고 주방의 불에 데이기도 했다"면서 "처음 해 보는 주방일과 손님의 위주로 돌아가는 쉴새 없는 삶이 너무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이정민 셰프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면서 웃는다.

 

"커플로 만나던 사람과 업장을 꾸린다는 것은 맑은 날만 있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행복하죠. 혼자 걸었다면 외로운 길이었을텐데 제가 옆에서 도움이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두 사람은 현재도 텐조의 새로운 공간을 꿈꾸고 있다. "전혀 다른 뉘앙스와 컬러를 풍기는 텐조의 세컨드 매장을 오픈하고 싶어요. 창고에 모아둔 소품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또 그로인해서 공감을 얻고싶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많은 돈을 버는게 아니거든요. 물론 수익이 나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선보이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고객들과 나누는 소통이에요. 아직 젊은데 큰 돈을 벌길 바라는 것은 욕심 아닐까요? 업장을 운영하고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빚지거나 지인들에게 폐끼지 않을만큼만 벌면 저희들은 행복해요."

 

어느새 어둑해진 북가좌동의 오키나와와 작별을 하며 두 사람과 닮은 격언이 떠올랐다. Maybe it's because it's too bright to see the future.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미래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