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적절한 시기에 눈에 들어오는 적절한 사람, 적절한 장소와 분위기, 이 모두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연애가 시작된다. 느닷없이 일어난 일 같아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이것을 우리는 타이밍이라고 부른다.
한국인과 기나긴 열애중인 삼겹살도 타이밍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육고기는 소(牛)였다. 고구려 시대 만주지방에서 한민족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들여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농업사학회의 농업사연구에 따르면 1909년 돼지의 도축수는 11만5천마리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1654만5491마리까지 큰 폭으로 증가한다.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실 삼겹살이라는 명칭이 사전에 등록된 때는 1994년도로 불과 26년 전이다. 삼겹살은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였던 방신영(方信榮)이 쓴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서 세겹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존재를 알린다. 1970년대 이전의 돼지고기요리는 수육과 볶음 위주였다.
1970년대에 산업화라는 타이밍을 맞으며 삼겹살의 역사도 함께 시작된다. 1973년 용인자연농원 양돈장이 개장되며 과학적인 양동산업이 시작됐다. 용인자연농원 양돈장은 당시 아시아 최대규모로 30만평에 6만두를 사육했다. 전국적으로 양돈장이 곳곳에 생기며 소고기보다 저렴한 가격의 돼지고기가 정육점에 유통이 됐다.
양돈산업은 부족한 국내 육류수요를 충당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의 축산진흥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목장을 건설했다, 주로 낙농과 한우를 선택했지만 삼성은 양돈에 집중했다. 대량생산과 자본회전율, 연관산업 등 연결고리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1976년 한우 파동으로 한우 가격이 급증하자 돼지고기는 삼겹살이 훌륭한 대체제가 됐다. 1979년에는 주식회사 태양에서 현진국회장이 국내 최초 휴대용부탄가스를 개발하면서 삼겹살구이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또, 사육농가에서 사육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돈육품질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게된다.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외식산업은 폭팔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삼겹살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장의 수도 증가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삼겹살보다 두껍고 한층 더 비계가 많은 오겹살도 등장한다.
1997년 IMF는 삼겹살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메뉴이자 술친구가 되는 계기가 된다. 1996년 돼지고기 수입개방이 본격화되면서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갔고 삼겹살 전문점이 전국적으로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직장인들에게는 고된 하루를 정리하며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위안을 찾게된다.
2014년도에는 삼겹살이 고급화되며 숙성삼겹살도 등장한다. 2016년에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베리코 흑돼지는 2013년 수출량은 1만8000톤이었지만 2017년에는 4배가 증가한 7만2000톤을 수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도에 들어서자 삼겹살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스테이크처럼 육즙이 흐르는 제주도 근고기 전문점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뉴트로(New-tro)'열풍을 타고 은박지 위에서 얇은 냉동삼겹살을 익히는 냉동삼겹살이 유행하고 있다.
다른이들에게 연휴인 오늘도 출근, 출입처에 일이 생기면 주말.휴가 개념이 없는 3D 업종인 기자는 3대가 덕(혹은 업)을 쌓아야 할 수 있는 보람되고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자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