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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매운맛에 빠졌을까

외국인들에게 한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매운맛'이다.

  
고추를 사용한 매운 음식을 먹는 나라는 많지만 우리 음식처럼 얼큰하고 칼칼한 매운맛을 다양한 음식에 적용시키는 나라는 많지 않다.

  
고추가 우리나라의 토종 작물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유독 매운맛이 발달한 것일까.

  
동아시아 음식문화와 역사를 연구해온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저서 '음식인문학'을 통해 한반도에 고추가 도입된 역사를 되짚으며 매운맛의 진화 양상을 살펴본다.

  
멕시코와 안데스 고원에서 처음 발견된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서유럽으로 전해졌고 이것이 16세기 이후 구대륙 각지로 전파된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며 18세기 중엽에 들어서 널리 쓰이게 됐다.

  
일본에서 전해진 고추가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게 된 이유를 주 교수는 18세기 조선 사회의 변화상에서 찾는다.

  
이 무렵 관혼상제가 피지배층에게까지 퍼지고 제사도 확대돼 주요 제수용품인 어물을 절이기 위한 소금의 수요가 급증했다. 또 이앙법과 대동법의 실시로 쌀 생산이 늘어 밥 중심의 식단구조가 이뤄지면서 반찬도 짠맛 중심으로 변해갔다.

 
때문에 소금의 수요를 대체하고 짠맛도 상쇄하기 위해 고추와 고춧가루 사용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때 형성된 '밥 + 짠 반찬 + 매운맛'의 한국식 식단이 점차 보편화하고 1970년대 고추의 품종 개량으로 고추 생산량이 늘면서 '한국음식=맵다'는 등식이 만들어지게 됐다.

  
주 교수는 저서를 통해 이처럼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한국음식을 읽어내고 있다.

  
주택과 가족제도의 변화가 음식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음식 한류'의 실체는 무엇인지, 근대의 물결 속에서 한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비빔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통음식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서술한 내용과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속에 묘사된 조선 음식이 얼마나 실제와 가까운지를 살펴본 부분도 흥미롭다.

  
저자는 책에서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식품학적, 역사학적, 혹은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의 연구만으로 그 전모를 밝히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식품학적이면서 역사학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의 이론과 방법이 도입되어야 가능하다"며 '음식학'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휴머니스트 펴냄 / 주영하 지음 / 560쪽 /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