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을 통해 배우는 건강 밥상 - 장조(사도세자)

  • 등록 2013.05.15 15: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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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해독 작용이 뛰어난 연근

장조(사도세자)


생몰연도 1735~1762

 

영도의 둘째아들로 2세 때 세자에 책봉되었다. 서예와 시를 좋아했으며, 15세에 부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대리할 정도로 정치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 왕후의 무고로 영조에게 수시로 꾸짖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궁녀를 죽이는 등의 정신 질환 증세를 보였고 결국 아버지의 영조의 분노를 사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굶어 죽었다.

 

조선왕조실록 엿보기


석음재에 나가 약방의 세 제조를 인견하고 왕세자의 환후를 묻다.
-영조 36년 경진(1760, 건륭 25년) 7월 10일(임자)

임금이 석음재(惜陰齋)에 나아가서 약방의 세 제조를 인견(引見)하고 이후에게 묻기를, “경이 동궁을 친히 보았는가?” 하니, 이후가 말하기를, “신이 비로서 종처(腫處)를 보니 혹은 종(腫)을 이루었고 혹은 곪아 터졌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의관들은 무엇이라고 이르던가?” 하니, 이후가 말하기를, “온천에 목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효과가 있을지라도 종종 다시 재발하니, 장차 어떻게 계속할 것인가?” 하고, 또 말하기를, “어제 온천 목욕을 금하는 교시를 내렸는데, 이제 내 아들임으로써 문득 허락하면 백성들이 나를 믿는다고 이르겠는가?”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세자가 아직 조섭(調攝)하는 중에 있으니 마음에 간절히 민망스러운데, 들은즉 여러 의원들이 모두 온천 목욕을 청한다고 한다. 이 뜻은 내가 이미 있었고, 혹시 효력이 있는데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는 어찌 아비가 된 도리이겠는가? 이로써 빙탄(氷炭)이 마음속에 섞여서 음식이 맛이 없고 잠자리도 편치 않다. 여러 의원의 말이 이와 같으며 무릇 어찌 버티고 어려워하겠는가마는, 이제 한더위를 당하여 조섭하는 중에 어떻게 말을 몰고 달리겠는가? 군병(軍兵)의 노상(勞傷)과 농민의 대후(待候)는, 아픔이 몸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으니, 처서(處暑)가 지나고 생량(生凉)한 뒤에 날을 가려 거행하라.” 하였다.


왕세자가 김한로의 상소에 대하여 정홍순의 일은 불허하고 이성모는 허락하다.
-영조 37년 신사(1761, 건륭 26년)2월 25일 (을미)

왕세자가 덕성합(德成閤)에 좌정하자, 승지가 김한로(金漢老)의 글을 가지고 입대(入對)하였다. 하령하기를, “바람을 쏘일 수 없어 문을 열 수 없으니, 승지가 높은 소리로 그 글을 읽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읽기를 마치니, 답하기를, “진달한 바가 절실하고 옳으니, 마땅히 깊이 유념할 것이다. 그러나 정홍순(鄭弘淳)에 대한 일은 지난날 도정(都政)하느라 분주하였을 때에 잘못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논한 바가 너무 지나친 데 관계된다. 그리고 이성모(李聖模)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분제조 김상익 등이 대조께 진현하는 일에 관하여 왕세자에게 아뢰다.
-영조 37년 신사(1761, 건륭 26년)3월 27일(병인)


분제조(分堤調) 김상익(金尙翼), 승지 박사눌(朴師訥), 사서(司書) 이창임(李昌任)이 소조(小朝)에 구대(求對)하여 예후(睿候)가 더욱 심해졌는가를 우러러 물으니, 하령하기를, “치통(齒痛)과 두통(頭痛) 및 복부(腹部)가 당기어 기동(起動)을 할 수가 없다.” 하자, 김상익과 박사눌이 말하기를, “약원의 관원과 도위(都尉)가 아울러 직숙(直宿)하고 있으니, 저하께서 진현(進見)하는 의절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니, 하령하기를, “그렇다면 군사들을 초기(草記) 하여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자, 이창임이 말하기를, “절차에 구애받을 것은 없지만, 단지 시위(侍衛)로 빨리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박사눌은 말하기를, “만약 초기를 들여보낸다면 대조께서 <소조의> 병을 근심하여 아마도 허락하지 않을 염려가 있을 듯합니다.” 하고, 김상익은 말하기를, “신이 보호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예후(睿候)가 억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하령하기를, “연(輦)을 타고 떠나려 하는데, 누울 수 있겠는다?” 하자, 김상익이 말하기를, “모장(毛帳)으로 가리면 반드시 바람에 닿을 염려가 없을 것이며, 누워서 떠날 수 도 있습니다.” 하니, 이창임이 말하기를, “신이 진현 초기를 정원에 올려야 하는데,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였는데, 하령하기를, “단지 진현하겠다는 뜻을 정원의 <승지로> 하여금 은미하게 품(稟)하게 되니, 더디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는다.” 하였다. 정원에서 진현하겠다는 하령(下令)으로써 품계(稟啓)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조리(調理)한다고 하면서 오는것은 내가 더욱 마음이 쓰인다. 승지는 가서 즉시 유시하여 거행하지 말도록 하라.” 하므로, 승지가 전교로써 소조에게 우러러 전달하니, 하령하기를, “지금은 병을 말할 시기가 아니지만 대조께서 이미 마음이 쓰인다는 하교가 계셨다. 그런데 억지로 거행하다가 만약 혹시라도 <병이> 더 심해진다면 대조께서 어떻게 더욱 마음을 쓰시지 않겠는가?


동궁의 허물을 아뢴 나경언을 친국하고 복주하다.
-영조 38년 임오(1762, 건륭 27년)5월 22일(을묘)


임금이 창문을 밀치고 크게 챙망하기를, “네가 왕손(王孫)의 어미를 때려죽이고, 여승(女僧)을 궁으로 들였으며, 서로(西路)에 행역(行役)하고, 북성(北城)으로 나가 유람했는데, 이것이 어찌 세자 로서 행할 일이냐?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왕손이라고 일커어 데리고 들어와 문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하니, 세자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경언과 면질(面質)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책망하기를, ”이 역시 나라를 망칠 말이다. “대리(代理)하는 저군(儲君)이 어찌 죄인과 면질해야 하겠는가?” 하니, 세자가 울면서 대답하기를, “이는 과연 신의 본래 있었던 화증(火症)입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차라리 발광(發狂)을 하는 것이 어찌 낫지 않겠는가?” 하고, 물러가기를 명하니, 세자가 밖으로 나와 금천교(禁川橋) 위에서 대죄하였다.


내의원 진단


사도세자는 참으로 불운한 잠룡(潛龍)이었다.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할 때의 업무처리 또한 아주 훌륭했으며, 질병 치료차 온양행궁으로 행차했을 때도 그 덕망을 칭송하는 백성의 무리가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정신병자로 몰렸으며, 비참하게 뒤주에 갇혀 굶어죽게 되었을까. 이는 영조가 정권을 잡을 때 발생되었던 태생적 원죄 때문이었다. 영조의 전대 왕은 장의빈의 아들 경종이었는데, 왕의 생모인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당시 집권 세력인 노론은 왕의 보복이 두려워 하루 빨리 경종을 없애야 했다. 이것이 바로 무수리의 아들 영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설은 그 당시에도 널리 유포 되었으며, 영조는 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히 노론과 결탁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되었으니, 사리 분별력이 뛰어났던 사도세자는 노론에 대해 반대되는 정책을 고수했으며, 노론은 사도세자가 차기 왕이 되었을 때의 보복이 두려워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도세자를 없애는 공작에는 정치적 위기감을 느낀 영조뿐만 아니라 심지어 세자의 아내인 혜경궁홍씨까지도 결탁했다. 이는 홍씨의 아버지가 노론의 영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혜경궁홍씨가 말년에 지은<한중록>에는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앓았으며, 왕이 되기 어려울 정도의 비행을 많이 저지르고 다닌 것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세자의 질병은 한중록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심한 종기를 앓아 온천 치료를 다녀왔으며, 치통과 두통과 복통이 심해 바깥바람 쐬는 것을 싫어할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평소 두려워하고 겁내는 증상을 가지고 있던 것을 알 수 잇으며, 이는 영조와 노론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세자처럼 시험이나 발표 때 심약하여 겁을 많이 내는 증상도 한방치료로 많이 호전 될 수 있으므로 주치 한의사와 상담해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라간의 음식처방 - 연근과 대추를 이용한 음식

 

연근의 주성분은 당질로 대부분이 녹말이다. 또한 일반 식물에는 적은 비타민B12가 함유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연근의 끈적끈적한 성분은 뮤신이라고 부르는 성분으로 단백질의 소화를 돕고 위벽을 보호해 준다. 성인병을 예방하고 피부와 몸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해독 작용도 한다. 연근은 과일 못지 않게 비타민C가 풍부하며 그 양은 100g당 레몬 1개의 양과 동일하다. 특히 연근의 비타민C는 녹말로 보호되어 있으므로 파괴되지 않고,  항암 효과가 높으며 항산화 성분으로 알려진 폴리페놀도 풍부하다. 적은양을 섭취해도 체내 흡수가 느려 인슐린 소비가 적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도움이 된다. 연근과 대추를 이용한 음식으로 연근전, 연근조림, 대추밤과일샐러드 등을 권한다.

 


<연근전>

재료(4인분)
연근 200g
감자 2개
밀가루 1/4컵
쑥갓 약간
식초 1작은술
식용유 5큰술
소금 1작은술
*양념장(진간장 1큰술, 통깨 1작은술)

 

 

<만드는 법>

1. 연근 껍질을 벗겨 손질한 뒤 냄비에 물과 식초, 소금을 넣고 삶는다.
2.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잘게 4등분 한다.
3. 연근과 감자를 믹서에 넣고 간다.
4. 3에 약간의 밀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달궈 한 숟가락씩 떠 넣고 위에 쑥갓을 올려 지진다.
6. 전을 접시에 담고 양념장을 곁들여 낸다.


글 양향자 {사단법인 세계음식문화연구원 양향자 이사장}
www.wfcc.or.kr  02) 511-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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