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1)[오너비사-과거에서 온 편지]'유통거인'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등록 2023.02.27 18: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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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기업, 소비자, 국가까지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전 인류를 덮친 코로나19 대유형이 잠잠해지기가 무섭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했고 튀르기예는 참혹한 지진을 이겨내는 중이다. 세계적인 경제둔화로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다. 오너의 성격과 자질, 상황, 운(運)기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인류사처럼 기업사도 일정한 주기가 있다. 이 세상에 없던 것, 혹은 익숙한 것에 혁신을 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형적인 것을 구체화시켜 유형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야한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직후나 고도화된 사회는 똑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물경제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유통기업으로 우뚝 선 기업의 오너들은 어떻게 회사를 일구어냈을까.

가진 것은 173cm키와 83엔...빈농 아들의 목숨을 건 도전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듯이 나의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해. 꾸준하게 천천히 올린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렇지만 목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매일매일 노력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내가 스스로 멈추기 전까진 끝내고 싶지 않아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지, 요즘 사람들은 열정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야. SNS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는 모습을 올리는 것은 주도적이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제군들, 생각해봤어? 워라벨을 외치면서 달콤한 것만 쫓기에는 젊음이 아깝지 않아? 가난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기에 20대 푸르름도 의미 없던 스물 한 살, 단돈 83엔을 갖고 현해탄을 건넜던 내 심정을 아는 이가 있을까? 밀항선에 홀로 몸을 실은 난 무척이나 외롭고 불안했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견뎌내야할 고초는 말도 못했지"

 

소설가를 꿈꿨지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조선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몸살나도록 좋아했던 청년, 경영에 혁신적이지만 유통부문에서는 박리다매식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성공할수록 외로웠던 남자, 신격호의 이력서다. 

 

우유 배달을 하는 조선인, 일본인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다

밀항을 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한 신격호는 당시 상황을 일본작가 후지이 이시무가 쓴 '롯데의 비밀'에서 "일본이 짓밟고 무시한 나 신격호, 반드시 성공한다"라는 절치부심으로 우유배달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징병을 면하기 위해 와세대공업학교 화공과에 진학해 사업을 진행하는데 밑바탕이 되는 지식들을 배우게 된다. 이른 새벽부터 고되게 배달을 하고서도 일을 마친 후에는 묵묵히 집하장 청소까지 도맡았으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고객들을 유치하고 우유 대리점의 매출도 점점 늘었다.

 

대리점 사장은 결근이나 지각 한번 없이 일하는 청년 신격호의 책임감과 성실함에 감동했다. 그리고 두 군데의 배달 구역을 독자적으로 운영해볼 것을 권유했다. 우유배달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신격호는 배달 물량이 늘어나면서 시간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본인이 직접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는 오너 기질을 발휘했다.

 

자신도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아르바이트할 상대를 고용한 것이다. 1942년, 부지런함을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은 신격호에게 사업자금을 내주면서 사업을 제안하게된다. 그는 6만엔을 빌려서 군수용 커팅오일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지만 두 번이나 폭격과 화재로 유실되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격호는 다시 일어났고 인생을 바꾸게 된 껌 한통을 일본인 친구에게 건네 받는다. 껌을 씹은 신격호는 입안에 퍼지는 향에 놀랐다.  그리고 껌을 사업 아이템으로 떠올렸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 껌회사를 일본에 차린 신격호는 5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입을 향기롭게...롯데왕국의 초석이 된 '롯데 껌'
당시 일본에서는 400여개의 껌회사가 있었지만 사업가로 변모한 신격호는 자신 만의 방법으로 껌을 만든다. 귀한 재료였던 멕시코산 치클과 송진, 사카린과 향료 등을 추가한 '스피아 민트'는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다. 기업 설립이후 롯데는 일본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일본의 시선을 곱지 않았다. 일본에서 껌 판매 1위를 달리던 '하리스'는 "롯데는 하찮은 조선인이 세운 기업이고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조선으로 빼돌린다"는 공격을 했다. 하지만 신격호는 1천만엔의 금액이 걸린 마케팅을 내세워 상황을 역전 시킨다.

 

고국에서 사업을 꿈꾸던 신격호는 마침내 1965년 한일협정으로 그 꿈을 이루게된다. 자본금 3500만원으로 롯데제과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껌에 이어 초콜릿류와 과자류도 생산했다. 신격호의 감성이 담긴 롯데껌은 소비자들에게 구매욕을 일으켰다. 1987년에는 대표적인 CM송 ‘멕시코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가 나왔다. 가수 윤형주가 부른 이 CM송은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롯데제과의 껌 매출은 1996년 1조원을 돌파한 뒤 2003년 2조원, 2009년 3조원을 돌파했는데, 2000년 출시된 자일리톨껌의 공헌이 컸다. 기존의 껌 형태와 포장 구조를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충치예방 효과와 를 강조한 자일리톨껌을 선보이며 ‘제2의 도약’에 나섰다. 자일리톨 껌은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이 설탕을 대체한데다 충치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효능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신격호의 첫 번째 사업아이템인 껌의 누적 매출은 4조 5000억원에 이른다.

 

 

소공동에 이어 잠실까지, 랜드마크가 된 롯데타운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국내에 처음 진출한 사업가 신격호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유서 깊은 반도호텔 자리에 새로운 호텔을 지을 것을 제안한다. 서울 한복판에 고급 백화점과 호텔을 짓는 다는 것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일본에 자투리 땅을 매입해뒀던 신격호는 복합개발을 구상한다. 300~400실 규모면 일류 호텔 소리를 듣던 1970년대 초에 40층, 1000실 규모의 호텔에 더해 백화점과 오피스타운까지 동시에 건설하는 전무후무한 구상을 한다. 그것이 지금 을지로에 있는 롯데타운이다.

 

신격호의 도전정신은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 등 잠실을 거대한 롯데타운으로 만든 뚝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잠실은 개발하기 좋은 땅이 아닌 황량한 모래벌판으로 비가 오면 한강 범람을 걱정해야 했던 유수지였다. 주변에는 참외 밭이었다. 서울의 변두리 땅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백화점과 호텔, 마트, 등이 포함된 거대한 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발표에  임원들은 배후 상권이 없어 장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회장 신격호는 “상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훌륭한 서비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잠실 일대는 곧 명동만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모두가 다 아는 현실이 됐다.

그는 관광 산업 육성에도 관심이 많았다. 관광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롯데 호텔을 건설하고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조성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다.

 

94세 국내 최고령 그룹 회장 신격호가 마지막으로 던진 승부수는 롯데타워의 건설이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으로 미리 부지를 사둔 곳에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단순한 쇼핑이 아닌 단순한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신격호의 숙원사업은 설계도를 23차례나 수정한 후 2017년 완공됐다.

 

"운을 믿지 않는다. 신용과 성실함, 현장에 답이 있을 뿐"
명예회장 시절 신격호는 한국과 일본을 한 달씩 오가며, 예고없이 현장에 나타나 꼼꼼하게 점검해 임직원을 당황하게 했다. 더불어 그들에게도 현장을 자주 확인할 것을 자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운은 믿지 않는다. 눈과 발을 이용해 현장을 가지 않는다면 롯데가 처한 상황과 고객의 욕구를 파악할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시간을 아껴쓰면서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현장 경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측백나무가 곁을 지키는 신격호가 잠든 묘역, 와석에는 “여기/울주 청년의 꿈/대한해협의 거인/신격호/ 울림이 남아 있다”고 새겨져 있다. 또, 고인이 평소 직원들에게 자주 하던 말 “거기 가봤나?”가 덧붙어 있다. 그 말로 현장 확인의 중요성과 부지런함을 강조한 경영 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껌으로 시작해서 재계 5위에 오른 롯데그룹, 살아 생전 신격호는 "운에 기대는 삶은 어리석기 떄문에 오늘도 새로운 선택과 마주한다. 정열을 갖고 일한다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지팡이를 짚고도 경영현장을 지켰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서 굴지의 기업이 된 롯데의 첫 자산은 바로 신격호의 ‘신용’과 ‘성실함’으로 요약된다.  일본으로부터 여러차례 귀화를 제안 받았지만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묻힌 거인 신격호는 지금의 롯데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또 다시 재앙이 닥쳐왔다. 납품기일을 며칠 앞두고 B-29전폭기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대대적인 폭격을 시작한 것이다."
"내 공장도 잿더미가 됐다. 하나미츠 어른에게 투자금 6만엔을 반드시 재기하여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비극으로 잘못이 없는 내가 갚을 필요는 없다면서 나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다시 재기해 예금액이 20만엔을 넘어섰을 때, 6만엔을 찾아 하나미츠 어른을 찾아갔다. 긴자의 과자점에서 산 만주 한 상자와  함께..."
"어르신! 6만엔을 돌려 드리려 왔습니다. 저를 믿고 투자하신 은혜, 평생 잊지 못합니다."
"하나미츠 부부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준 사람에게 부합하는 것은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근거없이 한국인을 모함하고 천대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인은 믿을 말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 中

푸드투데이 조성윤 기자 w74360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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