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김치'.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매년 이맘때면 한 해 먹을 김치 마련을 위한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김장이 고된 노동으로 여겨지면서 절임배추나 김장 키트가 판매되는가 하면 최근 1인가구 증가로 포장김치를 사먹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렇듯 김장 풍속도를 보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김장은 예부터 이웃 간 일손을 나누는 대표적인 지역 품앗이였지만 핵가족화로 가족 간 교류의 장으로 바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김장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포장 김치를 선호한다.
# 신선배추서 절임배추로...편리함 추구 '김장키트'까지 등장
김장 시 절임배추 이용은 이제 보편화됐다. 많은 주부들은 김장 시 가장 힘든 일로 배추 씻기와 절이기를 꼽는다. 시판 절임배추.양념의 보편화는 주부들의 김장 부담을 완화시켜준다.
6~7년 전부터 절임배추 수요가 늘기 시작해 이제는 원물배추보다 절임배추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실제 GS25에 따르면 김장용 절임배추 매출은 전년 대비 2018년에 37%, 2019년에 62% 각각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자체와 유통업체는 산지와 소비자를 바로 잇는 직거래장터를 통해 절임배추와 양념.부재료부터 담가놓은 김치도 판매한다. 집에서 이들을 버무리기만 하면 돼 한결 수월하게 김치를 담글 수 있다.
최근에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늘면서 1인 가구용 김장키트까지 나왔다. GS25는 1인 가구가 직접 간편하게 소용량의 김장을 담글 수 있게 한 3.2㎏ 용량의 김장키트를 선보였다. 충북 괴산 산지의 절임배추 2㎏과 국내산 재료로 만든 중부식 김칫속 1.2㎏으로 구성돼 가장 대중적인 김장 김치의 맛이 나도록 했다. 초보자들도 30분 내로 쉽게 김장을 완성할 수 있다.
# 1인 가족.맞벌이 부부 증가...김포족 김장 대신 포장김치
김장을 하지 않고 포장김치를 찾는 소비자도 매년 늘고 있다. 올해 김포족은 지난해 보다 1.3%p 증가했다. 김포족은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수시로 구입해 먹을 수 있는 포장김치를 구매할 계획이다.
대상 종가집이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총 5일간 종가집 블로그를 통해 총 2845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올해 김장 계획'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6.2%가 김장 포기를 선언해 지난해(54.9%)보다 1.3%p 높은 수치를 보였다.
올해 김장을 포기한다는 주부들 중 ‘포장김치를 구입해 김장을 대체하겠다’는 답변은 62.6%로 지난해(58%)보다 4.6%p 증가했다. 매년 김포족은 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가 걱정돼서(31.2%)’가 가장 많았고, ‘긴 장마로 배추 등 채소값이 비싸서(28.1%)’, ‘적은 식구 수로 김장이 불필요해서(16.4%)’ 등이 뒤를 이었다.
# 지역 품앗이서 가족 간 교류의 장으로...사라진 김장 보너스
한국인에게 김장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신선한 채소를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겨울이 오기 전 김장을 통한 겨울 나기 준비가 필수였다. 70~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김장은 겨울나기 동네행사였다. 김장문화는 이웃, 가족 간 어울림으로 이웃 간 노동력을 교환하는 대표적인 품앗이의 예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장은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과도 같았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1년에 한번 모여 김장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김장은 또한 가장의 경제력을 의미했다. 김장비용은 직장인의 한달치 월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김장 보너스를 지급하는 회사도 많았다. 요즘에는 김장 보너스 대신 김장 체험행사나 대규모 김장 나눔 행사가 대신하고 있다.
한국의 김장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김장문화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오며 한국인들에게 이웃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킨 중요한 유산이라는 점 등이 높이 평가받았다.
# 핵가족화.아파트 보편화...땅 속 김장독서 김치냉장고로
핵가족화와 아파트의 보편화로 김장 저장방법도 간편화되고 있다. 아파트가 많지 않던 시절 김장 후 김치는 김칫독에 담아 땅 속에 묻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이는 선조들의 오랜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김치를 맛있게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나라의 12월∼2월 땅속 30㎝지점의 평균 기온은 영하 1°C. 이는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류코노스톡(Leuconostoc)'이라는 유산균이 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다. 땅 속은 김치를 냉각시켜 주기고 하고 수분까지 유지시켜 줘 오래도록 신선하고 아삭한 김치를 맛 볼 수 있게 해줬다.
오늘날 가정에서는 땅 속의 김장독 대신 김치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김치냉장고는 금성사(현 LG전자)가 1984년 10월 출시한 'GR-063'이다. 김치냉장고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1990년대 중반, 만도기계가 내놓은 '딤채'다. 김치냉장고가 인기를 끌고 삼성전자가 1998년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었고 LG전자도 1999년 15년 만에 김치냉장고 시장에 복귀했다.
시장 초기 김치만 보관했다면 최근에는 야채, 생선, 육류, 와인 등 다양한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도 활용되자 35년 전 45ℓ였던 제품은 이제 600ℓ급까지 용량을 키웠다.
아삭한 김치 맛을 즐기기 위해 소량으로 김치를 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마다 다른 김치 취향에 맞춘 김치냉장고도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비스포크 김치플러스는 김치 종류에 따라 온도 조절이 가능한 '맞춤보관' 모드와 김치 숙성 정도를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맞춤숙성' 모드 등을 지원해 각양각색의 김치 취향을 맞춰준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4인가구 기준 김장 규모는 21.9포기 수준으로 전년 22.3포기보다 다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장시기는 11월 상순 강원·경기 북부 지역부터 시작돼 12월 하순 마무리되고 11월 하순(33%)에서 12월 상순(24%)에 집중될 전망이다. 김장김치 조달형태는 직접 담그는 비중이 62%(전년 63%)로 가장 높지만, 시판김치 구매 비중이 전년(19%)보다 증가한 24%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