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건강식·보양식 트렌드 확산과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로 염소고기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수요 증가는 국내 생산이 아닌 수입 확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산업 전반의 통계 인프라·품질관리 체계 부재가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2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최근 발표한 '염소산업 동향 분석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염소고기 수입량은 2015년 1,570톤에서 2024년 8,143톤으로 5.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염소고기 자급률(정육 기준)은 2019년 77.3%에서 2023년 37.7%로 하락했다.
2023년 기준 염소 사육 농가는 1만263호로 주요 축종 중 한우 다음으로 많지만, 농가 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농장당 사육두수는 41.3마리로 늘었으며, 전북(71.7마리)과 전남(70.4마리)이 대규모 사육지로 꼽혔다.
가축시장 2→22개소 급증…도축장 경유율 63.3%
염소 가축시장은 2023년 전국 2개소에서 2025년 22개소로 급증했다. 2024년 낙찰 마릿수는 2만5,621마리, 평균 낙찰 단가는 18,288원/kg으로 조사됐다.
도축 기반도 확충되는 추세다. 2025년 4월 기준 전국 염소 도축장은 23개소(휴업 2개소 포함), 2024년 도축 마릿수는 11만4,120마리로 집계됐다. 다만 연구진은 “2023년 출하량 18만6,000마리 중 도축장 경유율은 63.3%에 불과해 여전히 비공식 유통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염소 경매가격은 2018년 5,600원/kg → 2024년 1만8,700원/kg(충주축협 기준)으로 3배 이상 상승했으며, 생산액은 2010년 502억 원 → 2022년 1,672억 원으로 늘었다.
‘흑염소’ 간판 내걸고 호주산 유통…표시·이력 관리 부실
국내 유통시장에서는 ‘흑염소탕’ ‘흑염소 진액’ 제품이 늘고 있으나, 상당수가 호주산 염소육 또는 산양육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KREI 분석 결과, 온라인 간편식 제품의 절반 이상이 호주산 원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흑염소’로 표기된 제품도 원재료 함량·육수비율 등 세부 정보가 불명확했다. 제품 가격은 원산지에 따라 형성되고, 소비자는 품질보다 이미지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같은 원산지 혼란은 단속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2023년 원산지 위반 24건(거짓 21·미표시 3), 2024년 12건(거짓 8·미표시 4)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본지가 품관원 ‘원산지·축산물이력 위반공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7월 사이 이미 24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 사례로 한 흑염소 전문식당은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해 ‘표시변경’ 처분을 받았으며, 또 다른 식당은 호주산 염소와 국내산 염소뼈 혼합 후 모두 국내산으로 표기해 ‘표시삭제 및 변경’ 명령을 받았다.
현행법상 음식점은 염소고기를 포함한 6종 축산물(쇠·돼·닭·오리·양·염소)의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거짓표시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 미표시 시 최대 1,000만 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감서 “원산지 표시 강화 및 이력제 도입” 요구
지난 28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림축산식품부 종합감사에서도 염소고기 원산지 문제가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여수시갑)은 “개 식용 종식을 앞두고 대체보양식으로 염소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흑염소’ 간판 아래 대부분 호주산 산양육이 팔리고 있다”며 “원산지 표시 강화와 축산물이력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며 염소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축산물이력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 "건강엔 좋지만 냄새·가격 부담”
소비자 조사에서 염소고기 섭취 경험률은 52.2%, 진액 섭취 경험률은 31.2%로 나타났다. 남성·고연령·기혼·다인가구에서 경험 비중이 높았으며, 섭취 이유는 ‘영양성분’(건강), ‘피로회복’, ‘지인 권유’ 순이었다.
반면 섭취하지 않은 이유로는 ‘다른 육류 선호’, ‘냄새’, ‘가격’이 주로 꼽혔다. 만족도 조사(5점 척도)에서는 건강증진 효과(3.58), 맛(3.55), 육질(3.54)은 높았으나 가격(3.02)과 향(3.02)은 낮았다.
특히 ‘개 식용 금지 시 대체보양식으로 염소고기를 섭취하겠다’는 응답이 70.7%로 나타나 사회적 대체 수요는 명확히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표준화·이력관리·흑염소 보전 3축이 핵심”
KREI는 염소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통계 구축·표준화·품질관리 체계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생산 단계에서는 ▲종축 등록 및 혈통관리 ▲전통 흑염소 인증제 도입 ▲사양관리 기준 설정 ▲폐사율 저감 프로그램 마련 등이 필요하며, 유통 단계에서는 ▲도축장 경유율 제고 ▲품질 등급제 및 도축 규격 표준화 ▲원산지 허위표시 단속 강화 ▲수입육 이력관리 제도화를 제안했다.
또한 소비 단계에서는 ▲세부 품종(흑염소) 표시 강화 ▲제품 함량 표시 기준 신설 ▲냄새·가격 관련 품질 개선 ▲자조금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소비자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개 식용 종식은 염소산업에 구조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시점”이라며 “전통 흑염소의 혈통 보전과 국내산 자급률 제고가 병행되지 않으면 ‘보양식 산업화’의 이익이 외국산에 종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