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정부가 간장 식품유형을 간소화하는 개정안을 추진하자 시민단체에 이어 정치권까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전통 장류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회 중진의원들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개정안 추진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
11일 국회 등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산하 식품안전정보원은 지난 8월 13일 서울 용산구 비즈센터에서 ‘식품공전 분류 체계와 기준·규격 개선을 위한 산업계 자문단 회의’를 열고 간장 유형 개정안을 공개했다.
현행 식품공전상 간장은 ▲전통메주를 이용한 '한식간장' ▲콩에 밀.보리를 섞고 종국균을 띄워 제조한 '양조간장' ▲탈지대두를 염산으로 분해한 '산분해간장' ▲콩단백을 효소로 분해한 '효소분해간장' ▲한식간장.양조간장에 분해간장 등을 섞은 '혼합간장' 등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개정안은 발효 과정을 거쳐 제조되는 한식간장과 양조간장을 ‘발효간장’으로 통합하고, 두 제품 모두 콩을 원료로 미생물 발효와 숙성 과정을 통해 아미노산 성분을 형성하는 동일한 제조 원리를 갖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산분해·효소분해간장은 ‘소스류-아미노산액’으로 재분류하도록 했으며, 혼합간장은 ‘혼합장’으로 포함하거나 ‘조미간장’을 신설해 별도 관리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다만 혼합간장을 ‘조미간장’으로 신설할 경우, 산분해간장이 포함된 제품도 여전히 ‘간장’이라는 명칭으로 시중에 유통될 수 있어 소비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개정은 “복잡한 유형 체계가 생산·수출 활동에 걸림돌”이라는 업계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일부 업체들은 “불필요한 규제가 완화되고 소비자 혼란도 줄어들 것”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발효 방식과 기원이 전혀 다른 장류를 단순히 성분 유사성만으로 통합하는 것은 전통을 훼손하는 행정 편의주의라고 반발한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웧쇠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경기 화성시갑)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장류 식품공정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전통 메주와 장류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고유 식품”이라며 “분류체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위원회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역시 “장류는 한민족의 영혼이 깃든 음식”이라며 발효장류와 양조장류 통합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소병훈 의원(경기 광주시갑), 어기구 농해수위 위원장(충남 당진), 윤준병 의원(전북 정읍·고창)도 동참했다.
시민단체와 생산자단체가 참여한 대책위는 이날 “한식메주는 메주, 한식간장은 간장, 한식된장은 된장으로 구분해야 하며, 산분해간장은 소스류로 분류해야 한다”는 공동 입장을 내놨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식약처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민호 농식품부 그린바이오산업팀장은 “최근 5년간 한식간장이 양조간장·혼합간장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전통 장류와 양조 장류를 통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식약처는 한발 물러섰다. 문귀임 식품기준과장은 “290개 식품유형 전체를 포괄적으로 간소화하려는 연구사업의 일환일 뿐 장류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아직 초안 단계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원용 식품안전정보원 정책연구실장도 “25개로 비대해진 식품공전 대분류를 간소화하기 위해 조미식품류와 유사한 장류를 통합하는 개정안을 만들었을 뿐”이라며 “산업계·시민단체 의견을 반영해 더 나은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