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최근 건강을 중시하면서도 맛과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글루텐 프리(Gluten-Free)’ 식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식이 제한자 중심의 틈새 시장에 머물렀던 글루텐 프리 식품은 이제 대중적 건강식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국내 식품업계의 신제품 전략에도 변화를 이끌고 있다.
글루텐은 밀, 보리, 호밀 등에 포함된 단백질 성분으로, 소화가 어려운 일부 사람들에게는 복통, 위장 장애, 면역반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셀리악병’이다. 국내에선 발병률이 낮지만 글루텐 민감성이나 건강식단 이유로 글루텐 프리 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다.
2024년 10월,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3%가 글루텐 프리 식품을 섭취하거나 구매한 경험이 있으며, 76%는 향후 구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주된 구매 이유는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46.9%)’, ‘더 건강한 식품이라는 인식(31.4%)’, ‘다이어트 목적(22.4%)’ 순이었다.

식품 대기업도 속속 진입…“밀가루 대신 쌀.콩으로 만든 만두.쿠키·카레까지”
글루텐 프리 식품 수요 확대에 따라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도 잇달아 신제품을 출시하며 건강한 쌀가루 기반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오뚜기(대표 황성만)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한 ‘비밀카레’와 ‘비밀스프’를 선보였다. 스프는 일반적으로 밀가루, 버터를 주요 재료로 쓰느데 비밀스프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했다. 특히 비밀카레는 기존 카레 대비 지방은 30%, 당은 40% 줄였으며, 글루텐이 없어 소화가 더 편하다는 점에서 웰빙 식단 소비자를 겨냥했다.
풀무원(대표 이우봉)은 최근 ‘지구식단 메밀두유면’을 출시하며 밀가루 대신 콩과 메밀을 활용한 글루텐 프리 면 제품군(‘제로면’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수요 증가에 발맞춰 자사 의령두부공장에 생산라인을 구축해 월 생산량을 4배 이상 확대하고 있으며, ‘얇은두유면’, ‘납작두유면’, ‘비빔국수 키트’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만두피에 식물성 원료만으로 속을 채운 식물성 만두 '이슬만두'는 '한국 글루텐 프리 인증(KGFC)'을 획득했다.
하림(대표 정호석)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을 사용한 단백질 쿠키 ‘오!늘단백’을 출시해 ‘밀가루 제로’ 간식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해당 제품도 '한국 글루텐 프리 인증(KGFC)'을 받았다.
투썸플레이스(대표 문영주)는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를 사용한 ‘글루텐 프리 초콜릿 케이크’를 선보이며 베이커리 시장까지 글루텐 프리 트렌드를 확장하고 있다. 촉촉한 식감에 상큼한 딸기 콤포트와 치즈 생크림이 어우러져,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은 제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표시는 쉬워도 인증은 다르다” KGFC 제도 본격화
국내에서도 글루텐 프리 인증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2022년 도입된 ‘한국 글루텐 프리 인증(KGFC)’은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산하 인증 사업단이 운영하며, 원료 입고부터 제조·출하 전 과정에서 글루텐 오염 여부를 관리한다. 글루텐이 전혀 들어 있지 않거나, 함량이 20mg/kg(20ppm) 이하인 제품에만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까지 20개사, 90개 제품이 인증을 획득했으며 CJ, 풀무원, 오뚜기 등 대형 식품기업들의 인증 문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해외 바이어의 요구에 따라 수출용 제품의 품질 인증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표시 기준상 20ppm 이하 제품은 자체 표시도 가능하지만, 제3자 인증을 통한 신뢰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는 추세다. 협회 측은 “이전까지는 업체 자체 표시가 많았지만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해선 객관적인 인증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미·유럽 겨냥한 수출 전략에도 ‘쌀’이 핵심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글루텐 프리 식품 시장은 2023년 약 67억 4천만 달러(약 9조 7,700억원) 규모였으며, 2032년까지 약 138억 1천만 달러(약 20조 148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미는 2023년 51.63%의 시장 점유율로 글루텐 프리 식품 시장을 주도했다. 더욱이 미국 글루텐 프리 식품 시장 규모는 소비자들의 셀리악병에 대한 인식 증가와 건강한 식단 유지에 대한 관심 증가에 힘입어 2032년까지 59억 달러(약 8조 5,520억원) 규모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식품업계는 이 시장을 K푸드 수출 확장의 기회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대표적인 글루텐 프리 식품인 떡류의 2024년 수출액은 9140만 달러(약 1,313억원)로, 2019년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글루텐 프리 식품은 더 이상 특정 질환자를 위한 제한식이 아닌, 대중 건강식의 기본 옵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쌀가루, 가루쌀 등 국산 곡물의 기능성과 차별성이 부각되면서 국내 쌀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회로도 연결되고 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관계자는 “KGFC 인증은 단순한 마크가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안전성 보증 체계”라며 “국산 쌀을 활용한 다양한 글루텐 프리 제품이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