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해서 몇조씩 벌어 사고나 치고.."
조합원 240만 명의 거대 조직인 농협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농협 지배구조나 경제사업 부진 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역대 중앙회장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농협이 농민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비리의 복마전'이 아니냐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주무부처 장관이 아닌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곪은' 부위를 매섭게 들춰내자 농협은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농협은 당장 강도높은 개혁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군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 지배구조 문제..역대 회장 모두 구속
이 대통령은 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 간부라는 사람들이 농민을 위해 온 머리를 다 써야지 농민들은 죽어가는데 정치한다고 이권에나 개입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직접적으로는 현재 농협중앙회가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매각 비리 의혹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는 데 대한 언급이지만, 농협 지배구조 전반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협은 1980년대 후반 관치에서 벗어나 중앙회장을 조합장들이 뽑기 시작한 이후 1~3대 민선 회장이 모두 구속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3대 정대근 회장은 2005년 12월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현대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30일 징역 5년과 추징금 1300만 원의 형을 선고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정 회장은 이번 검찰 수사에서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당시 홍기옥 당시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50억 원을 받은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의 지배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상 큰 허점이 있지 않고서야, 3명의 회장이 20년 동안 계속 권력에 줄을 대고 전권을 휘두르다 범법자에 이르는 행태가 반복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전횡을 휘두르던 농협회장의 법적 지위가 2005년 농협법 개정으로 비상임으로 격하되고, 구체적 업무 결재권이나 예산권 등이 모두 사업부문별 대표에게 넘어갔지만, 여전히 농협회장은 인사권을 통해 농협 실무 전반이나 각종 이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 농협법 130조에 따라 회장은 사업전담 대표이사와 전무이사를 추천할 권리를 갖고, 조합장 대표들의 회의인 '대의원회'에서 동의를 거쳐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신용 등 주요 부문 대표가 오직 회장을 통해서만 추천될 수 있다는 점, 중앙회의 지원이 아쉬운 조합장들이 회장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 등이 '1인 권력 집중'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지적을 반영해 농식품부는 지난 9월 입법예고한 농협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중앙회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연임 횟수를 한 차례로 못박고, 현재 사실상 회장이 단독 추천하는 각 사업부문의 대표이사.감사위원장.감사위원.사외이사 등의 주요 임원을 임명하려면 반드시 인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높다. 아예 농협 중앙회장을 명예직으로 하고 인사권을 포함해 모든 권한을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경제사업 부진..제역할 못해
농협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농업인의 이익과 직결되는 경제사업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인들로부터 중앙회가 신용사업 등 '돈 장사'에 몰두하느라 뿌리인 농업.농촌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 역시 "농협이 금융해서 돈을 몇조씩 벌고 있는 데 번 돈을 농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농업인과 농협의 괴리 문제를 지적했다.
농협의 경제사업은 원래 농업인을 대신해 농산물을 수탁 판매하기 위해 시작됐다. 현장 농업인으로부터 생산물을 넘겨받아 가공, 판매하고 그 대금을 다시 농업인에게 돌려주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운영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일선조합의 경제사업은 일반 유통업자들과 다를 바 없이 현금을 주고 농산물을 사고 자기 책임 아래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
품질이 좋지도 않은 물건을 비싸게 사 되파는 과정에서 적자가 계속 쌓이고, 경제적 여력이 없으니 우수 인력을 놓치고, 인력 부족으로 다시 영업.판매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상태다.
이 때문에 농협 경제부문은 일선조합에서 약 8000억 원, 중앙회에서 약 1500억 원 등 거의 해마다 1조 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고 있다. 그동안 적자 대부분은 은행 등 농협 신용부문의 이익으로 메워져 왔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금융시장 호황에 힘입어 농협의 신용사업이 1조 원 안팎의 이익을 거둬 경제사업으로 수혈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 위기로 농협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데다, 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해외투자 손실에 대한 충당금까지 쌓으면 신용사업도 적자를 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푸드투데이 조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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