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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질타 하루 만에 나온 농협 유통혁신…‘선제 방어’ 통할까

이재명 대통령 질타 직후 '농산물 유통 전면 혁신안' 발표
산지 전속출하·예약형 정가수의 거래로 가격 교섭력 강화
스마트 APC 100곳·온라인도매시장 확대…기존 정책 재편
유통비용률 49.2%…농가 수취가·소비자가격 개선이 관건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농산물 유통을 민간과 농협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구조를 재검토하라고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농협이 ‘전방위 유통 혁신 대책’을 발표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농협중앙회(회장 강호동)는 15일 농산물 생산·유통·판매체계를 농업인 실익 중심으로 재편하고 도·소매 유통의 온라인 전환과 산지 시설의 디지털화를 추진해 ‘농업소득 3000만원 시대’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산지 전속출하를 확대해 농업인의 가격 교섭력을 높이고, 경매 중심 공판장을 예약형 정가수의 기반 온라인 거래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7년까지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100곳으로 늘리고 전국 150여 개 APC를 활용한 산지직송 체계도 구축한다.

 

이번 대책은 기존에 추진해온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계획을 구체화한 성격이지만, 이 대통령이 농협 중심의 농산물 유통체계를 직접 문제 삼은 직후 발표됐다는 점에서 정부 주도의 유통개혁 논의에 앞서 농협이 '선제적 방어' 성격이 짙다.

 

다만 상당수 사업이 기존 사업의 확대·재편에 해당하는 만큼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이고 농협 경제사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을지는 향후 실행력에 달렸다.

 

◇ 대통령 “농협에 거의 맡겨”…다음 날 혁신안 발표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농산물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움직임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통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 가격과 현지 생산지 가격 간 괴리가 너무 크다”며 “생산지 가격은 널뛰는데 소비 가격은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 라인에 대해 민간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농협에 거의 맡겨 놓은 상황인데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에 비용을 지출하든, 시스템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정부가 민간과 농협에 맡겨온 기존 유통체계를 점검하고, 산지 물류와 저장시설 등 민간이 단독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기반에 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농협이 다음 날 발표한 혁신안은 산지 조직화와 직거래 확대, 온라인도매시장 전환, 스마트 APC 확충 등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에 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산지 물량 결집해 농업인 가격 교섭력 높인다

 

농협은 생산 단계에서 산지 전속출하를 확대해 개별 농가의 분산된 물량을 결집하고 농업인의 가격 결정력을 높이기로 했다.

 

정예화된 산지 전속출하 생산자조직을 육성하고 공동마케팅을 비롯한 광역 단위 품목별 연합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직화된 물량을 바탕으로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산지의 교섭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유통 단계에서는 산지와 소비지 간 직거래를 확대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이고 농가 수취가격 높인다.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을 연결하는 ‘1도-다농’ 자매결연을 기반으로 도농상생장터를 확대하고 산지 농산물의 소비지 직접 판매를 늘릴 방침이다.

 

판매 단계에서는 농협 가공공장을 중심으로 대형 인기상품을 육성하고 외식기업 등과 농식품 공동개발과 공동마케팅을 확대한다.

 

기존에는 농협이 외부 기업에 농산물 원물을 공급하는 일방향 거래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원물 공급부터 가공식품 개발, 마케팅, 하나로마트 판매까지 연계하는 순환협력형 기업 간 거래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나로마트에는 종합컨설팅 조직을 신설하고 핵심 점포 중심의 운영 전략을 도입해 유통 효율성과 농산물 판매 역량을 높이기로 했다.

 

◇ 공판장 경매 줄이고 예약형 온라인 거래 확대

 

농협의 도·소매 유통체계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다.

 

도매 분야에서는 경매 거래 중심으로 운영돼 온 공판장을 예약형 정가수의 기반 온라인 거래로 전환한다.

 

예약형 정가수의 거래는 농산물이 도매시장에 반입되기 전 출하자와 구매자가 가격과 물량, 품질 등 거래 조건을 미리 확정하는 방식이다.

 

농협은 온라인 거래 전담조직을 신설해 국산 농산물 공급을 확대하고 당일 반입 물량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경매 방식의 변동성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는 대통령이 지적한 산지가격 급등락과 소비자가격의 비대칭적 움직임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풀이된다.

 

소매 분야에서는 농산물 온라인몰인 NH싱씽몰의 전국 단위 배송 서비스를 강화한다. 전국 150여 개 APC를 물류기지로 활용해 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 스마트 APC 100곳 확대…축산 유통도 디지털 전환

 

산지 생산·유통시설의 디지털화도 추진한다.

 

농협은 APC의 입고와 선별, 출하 업무를 전산화해 데이터 기반 경제사업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2025년 말 기준 전국 423개 산지유통센터 가운데 스마트 산지유통센터를 2027년까지 100곳으로 확대하고, 농협 산지유통센터 240곳에는 자동화 시설과 장비를 지원한다.

 

APC는 개별 농가의 농산물을 모아 공동으로 선별·포장·저장·출하하는 산지 유통의 핵심 시설이다. 농가의 물량을 조직화하고 출하 시기를 조절하면 산지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완화하고 대형 소비처와의 거래 교섭력을 높일 수 있다.

 

축산 분야에서는 한우 개량체계를 기존 수소 중심에서 유전체 분석 기반 암소 중심으로 전환한다.

 

초우량 암소를 선발하고 우수 수정란과 송아지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한우 생산정보 통합관리 플랫폼인 ‘NH하나로목장’을 고도화해 빅데이터 기반 농가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올해 1000개 농가를 대상으로 NH하나로목장 데이터를 활용한 컨설팅도 추진할 예정이다.

 

축산물 공판장에는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도축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축·가공·소포장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 유통 인프라도 구축한다.

 

농협은 이를 통해 작업 효율과 품질관리 수준을 높이고 축산물 유통비용을 절감한다는 구상이다.

 

◇ 스마트팜·이동장터 등 정부 농정사업 연계

 

정부 농정사업과의 연계도 강화한다.

 

중소농에 적합한 보급형 스마트팜을 매년 2200여 농가 이상에 지원하고, 식료품 구매가 어려운 농촌지역의 식품사막화 해소를 위해 이동장터를 확대할 계획이다.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과 어린이 과일간식 등 식생활 돌봄사업에도 참여해 국민 먹거리 안전망을 강화한다.

 

농협은 이번 혁신안을 통해 생산부터 판매까지 경제사업 전반을 농업인 실익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강조했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의 핵심 전략을 담은 이번 혁신을 통해 농업인 실익과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겠다”며 “생산·유통·판매 전 과정의 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농업소득 3000만원 시대를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 온라인도매시장 이미 급성장…기존 정책과 차별화 관건

 

다만 이번 혁신안의 상당 부분은 정부와 농협이 기존에 추진해온 농산물 유통정책을 확대하거나 재편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온라인도매시장을 핵심 유통경로로 육성하고 산지 조직화와 스마트 APC 확충, 온라인 거래 전용 물류체계 구축 등을 추진해왔다.

 

농협이 제시한 산지 전속출하 확대와 예약형 정가수의 거래, 스마트 APC 확대도 이 같은 정책 방향의 연장선에 있다.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거래액은 지난해 1조2365억원으로 2024년 6737억원보다 83.5%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1조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온라인도매시장 참여자의 산지 직배송과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186억원 규모의 맞춤형 바우처 사업도 새로 도입했다. 출하·정산자금 지원 규모는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했으며, 주요 품목 주산지를 중심으로 스마트 APC를 60곳에서 115곳으로 늘리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전체 농산물 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고 실질적인 비용 절감으로 연결하려면 안정적인 출하 물량과 구매자, 산지 직배송을 뒷받침할 물류망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농협 혁신안의 성패는 새로운 사업의 제시보다 기존 사업의 거래 규모와 참여 주체를 얼마나 확대하고, 농업인의 수취가격 상승과 소비자의 구매가격 안정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 유통비용률 49.2%…단계 축소만으로 해결 어려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농축산물 유통비용률은 49.2%로 집계됐다.

 

단계별로는 소매 단계가 25.2%로 가장 높았고 도매 14.5%, 산지 출하 9.5% 순이었다. 소비자가격의 절반가량이 산지 출하 이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셈이다.

 

단순히 유통단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단계별 비용과 유통주체의 마진을 구분해 공개하고 비효율이 발생하는 구간을 구체적으로 찾아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예약형 정가수의 거래와 온라인도매시장도 산지와 구매자의 참여 확대, 안정적인 물량 확보, 표준화된 품질정보, 결제·물류체계 구축 여부가 관건이다.

 

기존 경매 거래에 익숙한 출하자와 구매자가 온라인 거래로 이동할 수 있도록 가격 경쟁력과 정산 안정성, 배송 편의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농경연은 스마트 APC 확대와 함께 AI 선별로 생성된 품질 데이터를 도매시장과 온라인 거래까지 연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북 성주 월항농협 APC는 AI 선별 시스템 도입 이후 참외의 26개 결점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판별하고 처리 물량도 두 배 수준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농산물 유통개혁의 성패는 농협이 산지 물량을 안정적으로 조직화해 농업인의 가격 교섭력을 높이고, 정부가 물류·저장 기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완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농업정책 관계자는 "농업인이 제값을 받고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하는 구조를 만들려면 온라인 거래나 시설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농협 경제사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적 예산 투입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