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배달앱 등 통신판매 원산지표시 관련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배달앱 주문 단계에서 원산지 확인이 가능한 경우 음식 수령 시 포장재나 영수증 등에 원산지를 다시 표시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단체와 축산업계는 “배달앱 내 원산지 표시 이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표시 의무를 완화하는 것은 소비자 알 권리를 후퇴시키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이하 농식품부)는 지난 2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농업·농촌 분야 정상화 과제 추진 TF’ 회의에서 1차 정상화 과제 30개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배달앱 등 통신판매 원산지표시 관련 중복규제 개선’ 과제가 포함됐다.
농식품부가 제시한 개선 방향은 배달앱 등을 통해 소비자가 주문 시점에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조리음식 판매·제공 단계에서 포장재나 영수증 등에 원산지를 중복 표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영업자의 과도한 규제 준수 부담을 줄이고, 영수증 감열지 사용 증가나 스티커·포장재 제작 비용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행 통신판매 원산지 표시 의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비대면 거래에서 소비자가 식재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통신판매의 경우 판매 매체에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하고, 판매·제공 시에도 포장재에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포장재 표시가 어려운 경우에는 전단지, 스티커, 영수증 또는 전자적 형태의 영수증 등에 표시할 수 있다.
문제는 농식품부의 개선안이 ‘주문 시점에 원산지 확인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배달앱 이용 과정에서 원산지 정보는 메뉴 선택 화면이나 결제 화면에서 직관적으로 노출되기보다 별도 원산지 정보 페이지나 화면 하단 스크롤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의식적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원산지 정보를 지나치기 쉬운 구조다.
실제 배달앱 이용자들은 주문 단계에서 원산지 정보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40대 주부 A씨는 “배달앱으로 주문할 때 원산지가 표시돼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사진과 가격, 배달료, 배달 시간을 보고 선택하지 원산지가 눈에 띄지 않아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배달 후 영수증이나 포장재에 적힌 원산지를 보는 편”이라며 “원산지 정보가 길게 출력되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확인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도 “배달앱 원산지 표시 규제 완화보다 이행 점검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2024년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에 입점한 오리고기 판매업체 900곳을 조사한 결과, 원산지 표시율은 63.0%, 미표시율은 37.0%로 나타났다. 카페·디저트 전문점 600곳을 대상으로 한 우유 원산지 표시 조사에서도 표시율은 62.7%, 미표시율은 37.3%였다. 사실상 배달앱 입점업체 10곳 중 4곳가량이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오리고기 조사에서는 원산지를 표시한 업체 중 중국산 비율이 51.5%로 국내산 42.9%보다 높았다. 중식 업종의 원산지 표시율은 14.3%에 그쳤다. 원산지를 표시한 업체의 메뉴 평균가격은 2만1854원인 반면, 미표시 업체는 1만6500원으로 약 5354원 낮았다. 소비자가 원산지를 모른 채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유 원산지 조사에서도 국내산 냉장우유 활용 비율은 98.4%로 높게 나타났지만, 수입산 멸균우유 활용 비율이 14.7%로 확인됐음에도 이를 원산지로 표시한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수입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일부 업체가 원산지 표시를 소극적으로 이행하거나 사실상 회피하고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축산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오리협회는 최근 농식품부에 ‘배달앱 등 통신판매 원산지표시 관련 중복규제 개선에 대한 건의’를 제출하고 시행규칙 개정 추진 중단과 현행 유지를 요청했다.
오리협회는 “AI 발생에 따른 중국산 오리고기 수입량이 폭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달앱 등 통신판매 영수증에 표시하는 원산지를 생략하는 것은 오히려 수입을 부추기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오리고기 수입량은 2017년 3460톤에서 2020년 4375톤, 2023년 1만446톤, 2025년 1만5212톤으로 급증했다. 농식품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대책으로 2017년 11월부터 오리 사육 제한을 시행하면서 국내 생산 기반이 위축되고 수입산 의존도가 커졌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오리협회는 자체 온라인 모니터링 결과도 제시했다. 협회가 올해 2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배달앱 등에서 총 1299건을 점검한 결과, 225건(17.3%)이 원산지 미표시로 확인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신고됐다. 지난해 6~9월에도 협회 자체 점검에서 1019건의 위반 사례가 적발됐고, 이 가운데 257건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협회는 정부가 제시한 ‘중복규제’ 논리에도 반박했다. 배달앱에서 원산지를 확인하려면 소비자가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영수증에 표시된 원산지는 음식 수령 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수증 원산지 표시는 매 건마다 별도 조작을 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수증 발행 시 자동 출력되는 구조여서 실질적인 영업 부담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환경오염과 비용 부담 논리에도 이견이 있다. 협회는 통신판매의 경우 포장재 표시가 어려우면 전자영수증을 포함한 영수증에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어 별도 스티커 제작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모든 수입산 재료 원산지를 과도하게 길게 표시한 사례는 특정 업체의 표시 방식 문제이지, 원산지 표시 의무 전체를 완화할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업체들의 역차별 논란도 제기된다. 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원산지를 적극적으로 표시하며 소비자 신뢰와 차별화 요소로 활용해 왔다. 반면 수입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일부 업체가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표시 의무가 완화될 경우, 표시를 성실히 이행해 온 업체보다 표시를 회피해 온 업체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은 배달앱 원산지 위반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거졌다는 점에서 더 민감하다.
본지가 지난 2일 보도한 바와 같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적발된 원산지를 거짓 표시하거나 2회 이상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아 처분이 확정된 사례는 총 683건에 달한다. 특히 배달의민족(187건), 쿠팡이츠(23건) 등 배달 플랫폼 내 위반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산 배추김치를 국내산으로 표시하거나 수입산 축산물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비대면 식품 거래의 원산지 관리 사각지대가 이미 확인된 상황이다.
소비자단체와 업계는 제도 개선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중복 표시 부담을 줄이려면 먼저 배달앱 내 원산지 표시가 실제 주문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충분히 노출되는지, 원산지 미표시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플랫폼이 입점업체 표시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산지 표시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소비자가 가격, 품질, 안전성, 국내산 선호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특히 배달음식은 소비자가 조리 과정과 원재료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주문 단계와 수령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농식품부는 생산자 단체의 이 같은 현장 호소와 공식 건의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제 완화 방침을 고수하며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산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소비자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농식품부가 오히려 완강한 태도로 완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수입산 소비를 권장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번 사항은 특정 품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 체계와 직결된 만큼 영수증 원산지 표시는 반드시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