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

  • 등록 2008.05.29 18: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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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했다.

쇠고기 수입 재개 자체가 불가피한데다 한미 양국 모두 더이상 내놓을 카드도 마땅치 않는 상태에서 고시를 계속 미뤄봤자 국가신인도 등에 악영향만 줄 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왕에 맞을 매라면 차라리 일찍 맞고 향후 대책이나 일정에 차분히 나서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정부가 고시한 위생 조건에는 30개월 미만 소의 편도와 소장끝, 30개월 이상 소의 편도.소장끝.뇌.눈.척수.머리뼈.척추(등뼈) 등 광우병위험물질(SRM)을 빼곤 미국산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수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부칙엔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 권리 및 미국 내수용과 한국 수출용 SRM 일치 등 `검역 주권' 규정도 반영했다.

검역 강화 대책으론 SRM 혼입 방지를 위해 내장.혀 등 조직검사와 미국 현지 검역관 상주 및 도축장 정기 점검, 연령 확인 불가 SRM 전량 반송과 더불어 모든 음식점에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광우병 논란을 거치면서 한우 소비마저 위축되는 후유증을 겪자 송아지 가격안정제 기준가의 대폭 상향 조정과 사료.축산 현대화 자금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축산 농가를 적극 돕기로 했다.

한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주저앉는 소(downer)' 등 질병 우려가 있는 소의 도축을 엄격히 제한하고, 모든 동물성 사료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도 반영돼 있다.

고시를 앞둔 마지막 당정 협의에선 쇠고기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사태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연기론'까지 나왔으나 연기 이후에도 `쇠고기 정국'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결국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혼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큰 갈등을 겪어 왔다.

28일까지 닷새동안 계속된 촛불집회는 불법 가두시위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 당국간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졌으나 엄격한 법 집행과 국민 정서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법당국의 고심 속에 연행과 훈방 사태가 반복되고 `닭장 투어' 등 공권력을 희화화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대다수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해 온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이번 고시를 계기로 더욱 투쟁의 고삐를 죄면서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을까도 우려된다.

한동안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민주노총이 `쇠고기 고시'를 `하투'(夏鬪)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는 얘기도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도 고시 무효화 투쟁에 나서겠다고 천명, 정국 급랭은 물론 개원 초반부터 18대 국회의 파행을 예고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이 정부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 채 협상의 가시적 성과에만 매달렸다는 점, 이후 대국민 홍보 역시 구심점 없이 표류하면서 오늘에 이른 측면이 있는 만큼 1차적인 책임은 정부 쪽에 있다.

초중고생까지 나서 이를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되자 정부는 뒤늦게 추가 협의에 나서 괄적 의미의 검역 주권 확보 등 `장관급 레터' 형식의 합의를 도출했다.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축산농가와 음식점은 소비 위축이라는 엉뚱한 피해를 입었다. 이번 고시에 축산농가 지원 대책을 포함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4월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 협상이 재개된 이래 지금까지 참으로 숨가쁜 일정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도 차분히 헤아려야 할 때이다.

정부의 고시로 새로운 수입조건에 따른 검역은 내주초부터 본격 재개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작년 10월 등뼈 발견에 따른 검역 중단 조치 이후 경기도 일대 창고에 보관 중이던 미국산 쇠고기 5300여t이 곧 검역 과정을 거쳐 방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국가기관의 고시가 관보에 게재되면 국가신인도와 직격된 만큼 재협상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야당의 정치 공세가 거세지고, 촛불집회 등을 통한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우리 사회는 또한번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고시 확정을 발표하면서 "수입위생조건과 관련해 국민들께 큰 걱정을 끼쳐드린데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도 "어느 나라가 자기 국민에게 해로운 고기를 사다 먹이겠느냐"며 국민 건강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고시로 쇠고기 수입을 원점으로 되돌릴 길은 사실상 막혔지만 미흡한 점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철저히 되짚어봐야 한다.

국가 간의 신의에 바탕을 둔 아무리 불가피한 결정이었더라도 국민 건강을 조금이라도 위태롭게하거나 불리한 요소가 있다면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는 점을 정부와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을 섬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푸드투데이 - 기자 001@foodtod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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