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깊은 산 속 석굴암, 노스님과 동자승 단 둘이서 살았다. 너무 춥고 어두웠던 동짓날 아침, 동자승은 일찍 일어나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그만 불씨가 꺼져 있었다. 밤새 많은 눈이 와서 마을과의 왕래가 두절된 상황이었다. 노스님께 혼날까봐 겁이 난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같은 시간. 석굴암 근처 아랫마을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한 아낙이 인기척이 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발가벗은 동자승이 눈 위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낙이 어디에서 왔는냐고 묻자 동자승은 "석굴에서 불씨를 얻으러 왔다"고 대답했다. 아낙은 "엄동설한에 아이를 발가벗겨 불씨를 얻으러 보내는 법이 어디 있냐"고 안타까워하며, 펄펄 끓는 팥죽 한 그릇을 떠서 동자승에게 주었다.
동자승은 그릇째로 들이마시고 불씨를 얻고 홀연히 자취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놀란 아낙은 혹시 동자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해서 나가 보았지만 눈 위에는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눈이 녹은 뒤 노스님이 아랫마을에 내려온날 아낙은 동짓날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면서 노스님에게 전후 사정을 말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노스님은 동자승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불씨를 꺼뜨리고 나반존자께 기도를 드렸는데, 불씨가 저절로 되살아나 팥죽을 끓여 부처님께 공양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바라본 나한상의 입가에는 팥죽이 묻어 있었다.
동지(冬至).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은 날이다. 음이 가장 극에 달한다는 것은 이 날부터 낮, 곧 양이 다시 길어 진다는 의미도 된다.
낮의 길이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동지야 말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동지는 어지러운 시국에서 대변화의 기점이다. 인생의 엄동설한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석굴암의 나반존자가 불씨를 지펴주어 따뜻한 팥죽의 기적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