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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직산과 식약청의 무책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최근 코직산이 함유된 화장품의 명단을 일제히 발표했다.

‘코직산’은 일본에서 일본된장이나 술을 제조하는 공장에 근무하는 작업자들의 손이 하얗게 변한다는 사실을 연구한 결과 메주나 누룩 중의 곰팡이의 성분인 코직산이 피부를 희게 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응용해 미백화장품에 쓰게 된 물질이다.

지난 1월 일본에서는 쥐에게 코직산을 먹이는 실험을 한 결과 간암 유발 가능성이 밝혀져, 보건후생성이 코직산의 식품첨가물 사용금지를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코직산 성분을 피부에 발랐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실험 중이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코직산 성분을 사용한 미백화장품 판매업체들에 제조·수입 금지조치를 내렸다. 이뿐 아니라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코직산 함유 미백제품의 리스트를 후생성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런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식약청은 지난 1월 20일 식품위생법에 코직산을 식품첨가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코직산 함유 미백화장품의 유통에 대해서는 업계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한화장품공업협회는 지난달 28일 코직산 함유 화장품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업계 스스로 코직산 관련제품 제조·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미백화장품 시장은 해마다 20% 이상씩 성장해갈 만큼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다.

코직산이 들어있는 화장품은 미백화장품으로 고가의 기능성 제품으로 팔렸었다.

코직산 함유 미백화장품을 국내에서 제조·수입하는 업체들은 제조·수입 금지조처가 내려지기 전에 유통 중이던 제품들을 재고를 남기지 않고 팔기 위해 백화점 봄 세일기간 등을 이용해 열띤 판촉전을 벌여, 상당수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 채 제품을 구입했다.

이번에 발표된 코직산 함유 화장품 29개 명단에는 국내 굴지의 화장품 T회사의 제품이 무려 12개가 포함돼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부로 이 제품들의 허가를 자진취하하고 물건을 전량회수, 신제품들을 이름을 바꿔내놓는 등 잇따른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이미 재미는 볼만큼 봤다고.

한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코직산 함유 화장품의 안전성 논란이 방송에 보도된 뒤 코직산 화장품의 안전성 여부와, 우리 회사 제품에 코직산이 들어 있지 않은지를 묻는 소비자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직산화장품에 대한 식약청의 입장이다. 식약청은 일본에서 피부에 대한 추가연구가 이미 진행 중이므로, 그 결과를 취합, 필요한 경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등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최종적인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식약청이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제품의 유통을 업계 자율에 맡긴 것은 소비자 안전을 무시한 안이한 조처”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물실험 결과만을 놓고 피부에 발랐을 경우에 코직산이 유해한지 무해한지 모른다. 최종 유해성 판단이 있을 때까지는 바르던지 말던지 소비자가 결정해라”는 식의 조치는 한마디로 ‘무책임’그 자체이다.

이제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소비자들은 식약청의 좀더 강경하고 직접적인 후속 조치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