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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8]고종황제의 기쁨 '가비'가 모던보이의 '양탕국'이 되다...커피 2편

다방, 1960년대말 4000개를 돌파하며 전성시대 맞아
동서식품,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커피 '맥스웰하우스 코피' 시판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젊은남녀의 만남은 영혼의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는 법. 1933년, 스물네 살의 이상은 고혹적이고 풋풋했던 금홍이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 해 여름 이상은 금홍이와 함께 종로에 '제비다방'을 열었다.

'제비다방'은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지만 영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폐병이 심해져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이상은 금홍이에게 버림을 받아도 다방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상은 '식스나인', '쓰루', '무기' 등의 다방을 개업했지만 모두 폐업을 맞았다.

 

하지만 이상의 다방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당대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명소였다. 1945년 서울에만 백여개도 안됐던 다방은 1960년대말에는 4000개를 돌파하며 다방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당시 한국의 인구와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당시 인스턴트 커피는 대부분 다방에서 소비됐다. 한국에서 커피가 직접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동서식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반 동서식품은 미국 제너럴 푸드社와 기술을 제휴한 동서식품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국내에서 생산했다.

 

또, 경기도 부평공장을 완공하면서 본격적인 분말 커피 생산에 돌입한다. 1970년 출시된 '맥스웰하우스 코피'는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최초의 인스턴트커피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국내 커피시장에 세계적인 기업인 네슬레라는 막강한 경쟁사가 출사표를 던진다. 한국네슬레는 당시 국내에 불었던 외제 선호 분위기를 타고 호황을 누렸는데 동서식품은 블라인드 테스트 등 마케팅 활동을 통해 공세에 맞섰다. 이때 동서식품은 사은품을 증정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 시기에 사은품 규제(판매 금액의 일정 비율 이하)를 맞추기 위해 동서식품은 커피 받침대를 뺀 머그잔을 사은품으로 제공했는데, 우리나라에 머그잔이 보편화 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네슬레는 국내 진출 5년만에 시장점유율을 40%까지 확대했다. 이에 동서식품은 확실한 ‘품질 우위’만이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1996년 맥심 브랜드의 품질 및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1차 리스테이지’를 실시하게 된다. ‘맥심 리스테이지’는 제품 품질과 이에 적용되는 기술, 디자인 등을 전반적으로 모두 개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리스테이지가 성공적으로 단행됨에 따라, 동서식품의 시장점유율은 1998년부터 상승세로 전환됐으며, 1998년에는 점유율을 63.6%까지 확대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품질 우위를 견지하기 위해 4년마다 리스테이지를 실시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커피 시장의 기회로 작용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했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규모의 인원 감축이 되면서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이 대폭 줄었다. 커피타는 '미스 김'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직접 커피를 타 마시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믹스 시장이 급성장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냉온수기의 보급률도 한 몫 했다.

 

커피믹스가 개발되기 전 커피는 병에 든 인스턴트 커피, 설탕, 액상 크리머를 각각 다른 용기에 담아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적정 비율을 섞어 마셨다. 일명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커피1 설탕2 크리머2 이란 공식이 일반적이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1989년 첫 진출한 뒤 '테이스터스 초이스'로 5년 만에 국내 커피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했지만 동서식품의 기세에 눌려 시장 지배력을 잃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커피믹스가 가정과 사무실 등의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들어오면서 커피믹스 황금기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