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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투데이 창간 16주년 특집>고종황제가 반한 커피, 어떻게 한국인의 기호식품 됐을까(1)

동서.남양으로 나눠지는 인스턴트 커피의 현재는?
IMF 외환위로 커진 믹스커피 시장... 커피전문점 확산속에도 포트폴리오 다각화
스틱커피와 '라떼'제품 인기 얻으며 프리미엄 경쟁 본격화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 안옥윤으로 분한 전지현은 경성으로 가면 뭘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커피라는 것도 마셔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에도 커피에 대한 동경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유별나다. 오피스가 밀집한 지역의 커피전문점은 점식식사 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직장인들로 북적이고, 인스턴트 커피를 몇잔씩 마시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로 많은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 소비량은 세계 1위다. 그만큼 인스턴트 커피는 우리 실생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당시 단일 음식 중 주당 소비빈도가 가장 높은 품목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12.3회를 기록하며 주식인 배추김치(11.8), 쌀밥(7)을 추월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은 '고종'이다. 고종황제는 널리 알려진대로 1895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 후 120여년이 지난 지금, 커피는 한국인의 식생활에 뗄 수 없을만큼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10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편집자 주>


고종황제의 기쁨 '가비'가 모던보이의 '양탕국'이 되다
한국에 최초로 커피를 도입한 사람은 안토니엣 손탁이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웨벨 러시아공사의 처형으로 공사가 부임할 때 따라 들어와 명성황후 시해 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한 고종황제를 가까이서 수발을 들었던 여인이다.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한 고종은 이 때 극도의 노이로제로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여 수라상도 한국사람이 아닌 웨벨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안토니엣 손탁으로 하여금 짓게 하여 먹었다. 양식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커피에 맛을 들이게 된 것이다.


고종은 손탁을 신임하여 러시아공사관 입구에 호텔을 지어 그녀에게 주었다. 손탁은 2층 양옥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아래층에 식당 겸 커피숍을 열었는데 이 곳이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다. 이 커피숍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 병합을 위한 모사를 꾸미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손탁의 커피숍에는 민영환, 이상재, 이완용, 윤치호 등 외국에서 커피 맛을 들인 개화파 인사들도 자주 드나들며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니 손탁 호텔의 커피숍은 기구했던 한국 근대사의 산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커피는 ‘가비’ 내지 ‘가배’ 혹은 ‘양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커피 애호가인 고종을 거쳐 커피는 빠르게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모던보이와 모던걸, 이른바 지식인들의 기호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커피 애호가였던 시인 이상은 1930년대 서울 종로에서 ‘제비 다방’을 운영할 정도였다.



인스턴트 커피시장 개척한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 코피'
한국에서 커피가 직접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동서식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반 동서식품은 미국 제너럴 푸드社와 기술을 제휴한 동서식품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국내에서 생산했다.


또, 경기도 부평공장을 완공하면서 본격적인 분말 커피 생산에 돌입한다. 1970년 출시된 '맥스웰하우스 코피'는 커피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최초의 인스턴트커피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국내 커피시장에 세계적인 기업 네슬레와 같은 막강한 경쟁사가 합류하며 시장 경쟁이 격화됐다.


한국네슬레는 당시 국내에 불었던 외제 선호 분위기를 타고 호황을 누렸으며, 이에 동서식품은 블라인드 테스트 등 마케팅 활동을 통해 공세에 맞섰다. 이때 동서식품은 처음으로 사은품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사은품 규제(판매 금액의 일정 비율 이하)를 맞추기 위해 동서식품은 커피 받침대를 뺀 머그잔을 사은품으로 제공했는데, 우리나라에 머그잔이 보편화 된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네슬레는 국내 진출 5년만에 시장점유율을 40%까지 확대했다. 이에 동서식품은 확실한 ‘품질 우위’만이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1996년 맥심 브랜드의 품질 및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1차 리스테이지’를 실시하게 된다. ‘맥심 리스테이지’는 제품 품질과 이에 적용되는 기술, 디자인 등을 전반적으로 모두 개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리스테이지가 성공적으로 단행됨에 따라, 동서식품의 시장점유율은 1998년부터 상승세로 전환됐으며, 1998년에는 점유율을 63.6%까지 확대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품질 우위를 견지하기 위해 4년마다 리스테이지를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 6차 리스테이지까지 이어왔다.


커피타는 '미스 김'이 사라지자 믹스커피시장이 커졌다?
1997년 외환위기가 커피 시장의 기회로 작용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했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규모의 인원 감축이 되면서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이 대폭 줄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직접 커피를 타 마시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믹스 시장이 급성장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냉온수기의 보급률도 한 몫 했다.


커피믹스가 개발되기 전 커피는 병에 든 인스턴트 커피, 설탕, 액상 크리머를 각각 다른 용기에 담아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적정 비율을 섞어 마셨다. 일명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커피1 설탕2 크리머2 이란 공식이 일반적이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1989년 첫 진출한 뒤 '테이스터스 초이스'로 5년 만에 국내 커피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했지만 동서식품의 기세에 눌려 시장 지배력을 잃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커피믹스가 가정과 사무실 등의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들어오면서 커피믹스 황금기를 누렸다.


또, 커피믹스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심은하.이미연.이나영.김태희 등 당대 수많은 톱스타 남녀 모델이 등장하며 상승세를 더욱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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