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부인 이화경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면서 재벌 총수들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먼저 등기이사직을 포기한 인물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신세계와 이마트, 두 회사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2010년 신세계 등기이사로 선임돼 2011년 인적 분할된 이마트의 등기이사도 맡아왔지만 계열사 부당지원, 직원 불법 사찰 혐의로 회사가 최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자리에서 물러나자 논란이 일으켰다.
당시 신세계측은 “2011년 기업 인적분할 당시부터 논의해왔으며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3월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신 회장은 부회장은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직 중 롯데쇼핑 대표이사직만 사임했고, 롯데쇼핑에서도 등기이사직은 유지했다.
신 회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롯데쇼핑만 사임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심한 유통업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가장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 부부도 등기이사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재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대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기업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면서 경영을 해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내년부터 연봉 5억원이 넘는 등기이사의 명단 공개가 의무화 되지만 삼성, 신세계 등 주요 그룹사의 대주주들이 등기이사직을 이미 사퇴했거나 미등기 이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기업은 176개사, 공개 대상은 536명이며, 이중 대주주 일가가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기업은 54.5%인 96개사, 대상은 94명에 불과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연봉 공개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내년 3월 시행되는 시점에서 미리 손을 써 보수 공개를 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경우 연봉공개 대상자는 이건희 회장의 장녀로 호텔신라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이부진 사장이 유일하며, 신세계 일가의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2월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이명희 회장, 정재은 그룹 명예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역시 미등기 임원이다.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쇼핑, 롯데제과, 호텔롯데 등 3개사, 차남 신동빈 회장이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케미칼 등 3개사, 장남 신동주 부회장이 호텔롯데, 장녀 신영자씨가 롯데쇼핑, 호텔롯데 2개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